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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대

조선팔도 사냥 다녔던 세종

by afsefe 2022. 12. 20.

대동야승

기재잡기 1(寄齋雜記一) 

역대 조정의 옛이야기 1[歷朝舊聞一] 

세종

우리 나라의 예악 문물이 세종 때부터 융성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크게 갖추어졌으며, 여러 임금들이 잇달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일찍이 세종 때의 주서(注書)의 《일기초(日記草)》를 보니, 상감께서 친히 양성ㆍ진위ㆍ용인ㆍ여주ㆍ이천ㆍ광주 사이를 사냥 다녔는데, 때로는 한달이 지나서야 돌아오셨다가 이튿날 또 떠나곤 하였다. 길가의 시골 백성들이 더러는 푸른 참외를 드리기도 하고 더러는 보리밥을 드리기도 하였는데, 그러면 반드시 술과 음식으로 답례하였다.

《일기》책머리에는 여섯 사람의 대언(代言)과 두 사람의 주서의 성을 죽 써 놓으면서도 그 이름은 쓰지 않았고, 좌대언(左代言) 밑에는 진한 먹으로 크게 써 놓기를,

“종일토록 취해 누워서 인사불성이니 우습도다.”

하였다. 가만히 생각건대, 푸른 참외와 보리밥이라면, 봄 가을로 정상적으로 사냥할 때가 아니요, 중요한 정무를 맡은 승지는 취해 누워서 일을 폐하는 직책이 아니니, 대개 태평 무사한 성덕(盛德)에서 나온 것이긴 하나 그 군신간에 협조하여 서로 닦고 서로 경계하는 데에 있어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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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동안 비워뒀다면 정사는 과연,

세종시기는 수레가 있던 시기였는데 여행다니다가 부서진게 장영실의 수레다. 

수레는 세종시대 이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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