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창성은 조선에서 명나라로 끌려간 고자들로 보인다.
세종실록 45권, 세종 11년 8월 12일 병술 1번째기사 1429년 명 선덕(宣德) 4년
명나라 사신 이상과 창성의 염치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정사를 보고, 윤대를 행하고,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좌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명나라 사신 이상(李相)은 매우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 가는 곳마다 번번이 사람을 구타한다니, 본국(本國)의 사람으로서 감히 모질고 사나운 짓을 함부로 함이 어찌 이와 같은 자가 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또 들으니 창성(昌盛)이 영접 도감(迎接都監)의 은발(銀鉢)을 훔쳐갔으며, 또 지나가는 주현(州縣)에서 의자(椅子)라든가 좌구(坐具) 같은 물건도 좋은 것을 보면 보는 대로 탈취(奪取)해 가고, 또 민간(民間)의 말을 빼앗아 간 것을 윤봉(尹鳳)이 듣고 찾아서 돌려주었다고 하니, 창성(昌盛)의 탐욕하고 완악(頑惡)하며 염치가 없음이 또한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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