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조시대32

진법을 몰랐던 조선인들 선조실록 190권, 선조 38년 8월 1일 계묘 2번째기사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주역》 규괘를 강하다. 심희수 등이 수재 피해 상황 등을 아뢰다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 사람들은 병서(兵書)나 진법(陳法)에 관한 책은 읽지 않고 활쏘고 말타는 정도만 익히고 있다. 병서를 모르기 때문에 일이 벌어지기만 하면 맹인이 길을 가는 것처럼 엎어지기 일쑤이니, 어디가 지킬 만하며 어디를 차단해야 할지를 아는 무장이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중국인의 경우는 무장도 모두 글을 알고 있다." 2023. 7. 20.
중국인 섭정국의 행패 진법을 몰랐던 조선인들 https://iece12345.tistory.com/360 임진왜란 시절 - 조선인들은 문치로 인해 무(武)를 천시하다 보니 진법이나 병서를 전혀 모르던 민족 이었다. 그래서 중국인 중에 진법에 잘알던 섭정국 이란 사람을 극진히 대접하며 조선 병사들에게 진법을 훈련 시켜주기를 바랬는데, 그러긴 커녕 조선인들을 두둘겨 패며 오만 방자하게 굴어서 제발 돌아가 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글로 보아 이당시에는 조선의 풍수지리도 크게 쇠퇴했던 모양이라서 섭정국에게 조선 궁궐터를 묻고있다. 선조실록 136권, 선조 34년 4월 3일 경오 2번째기사 1601년 명 만력(萬曆) 29년 사신이 섭정국의 행적을 규탄하다 섭정국은 중국의 무뢰인으로서 경리(經理) 문하의 일개 편졸(褊卒)에 불과한데, 공.. 2023. 7. 20.
이순신 가짜 장도 교차검증 ※ 이순신의 가짜 장도 https://iece12345.tistory.com/341 ※ 성호이익 [李瀷] 1681(숙종 7)∼1763(영조 39).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사설 - 일본과의 무역 저들의 은(銀)ㆍ칼ㆍ거울 등 기묘한 기구(器具)와 기이한 물건들을 교역한다. ※ 난중일기 을미년(1595) 7월 21일 (임진)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렸다. [양력 8월 26일] 우후가 들어온다고 들었다. 식사를 한 뒤에 태구련(太九連)․언복 (彦福)이 만든 환도를 충청수사․두 조방장에게 각각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 장도 슴베 - 1594년 태귀련(太貴連)과 이무생(李茂生)이 만들었다 ------------------ 보면 알겠지만 상호사설에 칼등 기묘한 기구와 기이한 물건을 교역한다 라고 쓰여있다... 2023. 7. 7.
이순신의 가짜 장도 난중일기 을미년(1595) 7월 21일 (임진)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렸다. [양력 8월 26일] 우후가 들어온다고 들었다. 식사를 한 뒤에 태구련(太九連)․언복 (彦福)이 만든 환도를 충청수사․두 조방장에게 각각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저물 무렵에 아들 울(蔚)․회와 우후가 같은 배로 섬 밖에 이르러 아들들만 들어왔다. --------------- 현재 국보승격을 앞두고 있는 이순신 장도, 그러나 지금도 위조 논란은 여전하다. 지금 있는 이순신 장도에는 1594년 태귀련(太貴連)과 이무생(李茂生)이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장도와 저 난중일기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내용이 일치하는건 1795년에 쓰인 난중일기 전서 내용과 일치한다. 전서 내용을 보면 난중일기 전서 .. 2023. 7. 5.
이순신의 가짜 팔사품 명나라 황제 신종이 내려줬다는 이순신 팔사품 그러나 조사해 봤더니 전부 가짜로 판명났다. 우선 도독인도 후대에 위조 된 거였다. 그렇다고 동시대 기록이 있는것도 아니고, 팔사품 중 3종은 임진왜란 유물도 아니였다. 물론 임진왜란 끝나고 멀고먼 나중 기록에 명황제에게 팔사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으나, 훗날에 쓰여진 기록은 안맞는게 많아서 사료적 가치가 떨어진다, 임진왜란 동시대 기록에 팔사품 기록이 없고, 지금 현존하는 팔사품들이 가짜라면 나중에 팔사품이 위조되면서 맞물려서 기록된 거다. 이순신 사후 60년이 지난후 유학자 김육이 쓴 신도비명에 명황제가 이순신에게 도독인장을 내렸다고 처음 기록되어 있다. 그외에 정조시기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신도비명 기록이 후대에 인용되면서 사실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 2023. 7. 5.
중국인에게 곤장 맞은 조선 장군들 박진 중국인 에게 맞아 죽다 https://iece12345.tistory.com/243 관유격 이라는 중국 장수가 조선장군 4명을 묶어다가 곤장을 치고 온갖 치욕을 보였다. 이당시 조선인들은 중국인들의 노리개 였다. 참고로 박진이라는 조선장군은 누승선 이라는 중국 장수에게 4년후에 맞아죽는다. ​ ※ 선조실록 40권, 선조 26년 7월 18일 경오 3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박진 등에게 곤장을 친 관 유격의 일로 경략에게 게첩을 보내라 전교하다 상이 정원에 전교하였다. "지금 듣건대 관 유격(毌遊擊)이란 자가 심유경(沈惟敬)의 말을 듣고 왜적을 비호하여 박진(朴晉) 등 네 장군을 묶어다가 곤장까지 치고 온갖 치욕을 보였다고 하니 통분함을 견딜 수 없다. 박진 등이 비록 배신(陪臣)이기.. 2023. 3. 25.
박진 중국인 에게 맞아죽다 너무 끔찍한 내용이어서 , 선조수정 실록이나 기타 여러 선비들 문집에서는 기록이 없는데, 간신히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그당시 조선인들이 어떤 취급이나 당하고 살았는지 알수있다. 선조 88권, 30년(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5월 29일(기미) 1번째기사 《주역》을 진강하고 김응남이 서계초를 올리고 군량·축성 문제 등을 의논하다 경립이 아뢰기를, “박진(朴晉)의 사망은 중국 장수에게 구타를 당해서입니다. 죽은 뒤에 보니, 가슴뼈가 부러져 있었다 합니다. 국가의 일로 죽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 비하여 더욱 참혹합니다. 지난번에 홍계남(洪季男)의 노모(老母)에게 음식물을 하사하도록 명하자, 중외(中外)가 모두 감격했었습니다. 박진이 홍계남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그에게.. 2023. 3. 25.
선조임금의 우울 전시대보다 나은 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선조가 푸념을 하는글 고려시대는 강했는데, 왜 조선은 약한가 고려시대는 문장을 잘했는데, 왜 조선은 그보다 못하는가 고려시대는 부유했는데, 왜 조선은 그렇지 못한가 선조가 말하는 걸 읽어보면 분명히 문제점을 알고있다. ​ 선조실록 191권, 선조 38년 9월 28일 기해 1번째기사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체찰사 한효순과 북로·남왜의 방어, 병졸 훈련·기계 수리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 내 오늘의 일을 살펴보건대 우리 나라는 무략이 강하지 못하고, 조종조의 일로 말하여도 일찍이 한 번도 싸워서 승리한 적이 있지 않다. 우리 나라의 무략은 고려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알 수 없거니와 문치(文治)의 소치로 그렇게 된 것인가. 문장(文章)으로 말하더라도.. 2022.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