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장8

설총이 쓴 풍왕서 신라 설총이 쓴 풍왕서 다. 설총이 누구인가 이두를 만든 사람이다. 성이 설(薛)이고 이름이 총(聰)이다. 이름이 총이라고 이상하다. 지금이나 이상하지 그당시엔 총명한 사람에게 붙이는 좋은 뜻이었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점은 신라 시대는 훈독이 살아있던 시대다. 지금 한국은 세종이 훈독을 말살 시켜 버렸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설총 이라고 음독화 시켜서 부르는 것 뿐이지 한국 고유어로서 설총이 뭔지는 모른다. 지금 한국에 남아 있는 훈독은 일상어 뿐이다. 예를 들어 일본어의 총(聰)의 훈독은 사토이さとい 음독은 소우そう 다. 그렇다면 한국의 고유어인 총(聰)의 훈독은 무엇이었을까, 동문선 제52권 / 주의(奏議) 풍왕서(諷王書) 설총(薛聰) 신은 듣자오니, 옛날 화왕(花王 모란(牧丹))이 처음으로 이곳.. 2023. 12. 10.
사장학 시험 백자과 이색 은 성리학과 사장학 , 불교 전부 좋은 감정을 가주고 있었다. 그러나 소인배들이 조선을 건국 하는 바람에 오로지 성리학 뿐이고 불교와 사장학은 크게 쇠퇴했다. 100년만 지나도 언어는 변하는 법인데 한국어가 거칠고 투박한 이유는 사장학이 발전 못해서 그런것이다. 언어에서 성조는 다 사라지고 천박한 민족 답게 욕문화만 발달했다. 고려시대는 불교와 사장학이 주류였다. ※임하필기 제12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백자과(百字科) 이색(李穡)의 십운시(十韻詩)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백자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이 백자과를 통해서 진출한 자들이 많은데 열헌(悅軒) 조간(趙簡) 선생이 그중에서도 더욱 걸출한 분이다. 스스로 생각건대, 나 또한 신사년(1341.. 2023. 7. 16.
고려시대 화가 정홍진 고려시대 문인이자 화가였던 정이안은 목죽도 네그루 그려서 이규보에게 주었다. 이안(而安)은 자이고 이름은 정홍진[丁鴻進]이다. 현재로는 내려오는 그림은 한점도 없다. 조선시대 묵죽도는 많다. 고려시대 중후기는 사장학이 주류라서 화가였어도 사장학은 기본이었다. ​ ★정이안(丁而安) : 고려 때 문인 화가. 이안은 자(字). 이름은 홍진(鴻進), 본관은 압해(押海 : 나주〈羅州〉). 고종 때 비서감(祕書監)을 지내고 시문에 능했으며, 특히 묵죽(墨竹)으로 유명하였다. ★이도……흔들까 : 바람은 본래 형체가 없이 공허한 것인데, 어찌 대를 흔드느냐는 뜻이다. 이규보 문집 ※동국이상국후집 제11권 / 찬(贊) 학사(學士) 정이안(丁而安)이 묵죽(墨竹) 네 그루를 그려 주기에 각각 찬을 짓다 ​ 노죽(露竹) 우뚝.. 2023. 5. 3.
백운거사 이규보의 몽비부 동국이상국전집 제1권 / 고부(古賦) 6수(首) 몽비부(夢悲賦) 저 예쁘게 생긴 왕손(王孫 귀공자(貴公子)의 칭호)은 훌륭한 집안에 태어났지. 뛰어난 풍류(風流)도 사랑스럽고 윤택한 얼굴도 옥과 같은데, 나갈 땐 높은 수레, 들어올 땐 화려한 집, 여의주(如意珠)를 들어 산호(珊瑚)를 부수고도 마음속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네. 뒷방에 고운 여자 비취잠(翡翠簪) 꽂고 가죽 신 끌면서 나와 찬란한 차림으로 번갈아가면서 모실 때 쨍그랑 울리는 패옥(佩玉) 서로 부딪친다. 눈에 드는 아리따운 태도와 귀에 익은 거문고와 피리 소리에 겨울철 찬 바람에도 추운 줄 모르고 여름철 찌는 듯한 날씨에도 더운 줄 모르니 이 세상 인생살이에 온갖 곤궁과 걱정과 슬픔이 있다는 것을 어찌 알랴? 봄 날씨가 이미 따뜻해지면 꽃다운 .. 2023. 4. 8.
명성이 높았던 공민왕의 글씨 공민왕은 뛰어난 화가이자,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권근의 시문집 양촌선생문집 제23권 / 찬류(讚類) 이씨(李氏) 이름의 어찰(御札)에 대한 찬 병서(幷序) 내가 서원(西原) 이공(李公)과 함께 공민왕(恭愍王)을 섬겼을 때, 공은 임금을 호위하는 임무에 있었고 나는 문학의 일을 보았다. 문무(文武)의 길은 달랐으나 아침저녁으로 서로 좌우에 함께 있었으므로 정의가 형제와 같았는데, 하물며 나는 한씨(韓氏)의 인척임에랴. 그 정의가 더욱 두터웠다. 당시 그의 아버지 의곡 선생(義谷先生)이 아직 건강하였는데, 임금은 그가 늙은 학자이며 오랜 덕망이 있다 하여 특별히 예모(禮貌)를 더해 대우하고 친히 ‘의곡청경(義谷淸卿)’이라는 큰 글씨 넉 자를 써서 내렸으며, 목은 상국(牧隱相國)이 이에 대해 찬을 지었다... 2023. 4. 7.
사림파 조광조의 조상 조온 조광조는 사림파의 영수(領袖)다. 영수는 우두머리 라는 뜻이다, 사학계에서는 사림파가 조선왕조를 반대하고 낙향한 인물들이 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조광조의 선조 양절공 조온은 전혀 그런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조온은 조선 개국공신 중 한명이고, 조온의 아버지 양렬공은 이자춘의 딸과 결혼하여 조선왕조와 친족으로 이어져 있다. 그외에도 사림세력이 화를 당한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의 인물 90여명중 70퍼센트 정도가 한양 거주자 였다. 더군다나 세조의 찬탈에 협력한 사람들이 공신책봉을 받았는데 이때당시 훈구파들은 사장학자들이다. 훈구와 사림의 대립은 곧 문학 이냐 도학 이냐의 싸움이었다. 역사 지식이 짧은 사람들이 이걸 이해 못하는 이유는 고려시대를 이해 못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는 사장학과 불교.. 2023. 4. 6.
선조임금의 우울 전시대보다 나은 국가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선조가 푸념을 하는글 고려시대는 강했는데, 왜 조선은 약한가 고려시대는 문장을 잘했는데, 왜 조선은 그보다 못하는가 고려시대는 부유했는데, 왜 조선은 그렇지 못한가 선조가 말하는 걸 읽어보면 분명히 문제점을 알고있다. ​ 선조실록 191권, 선조 38년 9월 28일 기해 1번째기사 1605년 명 만력(萬曆) 33년 체찰사 한효순과 북로·남왜의 방어, 병졸 훈련·기계 수리 등에 관해 이야기하다 내 오늘의 일을 살펴보건대 우리 나라는 무략이 강하지 못하고, 조종조의 일로 말하여도 일찍이 한 번도 싸워서 승리한 적이 있지 않다. 우리 나라의 무략은 고려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알 수 없거니와 문치(文治)의 소치로 그렇게 된 것인가. 문장(文章)으로 말하더라도.. 2022. 12. 24.
고려시대 농촌 부인 제정집 [霽亭集] 고려말 이달충의 시문집 , 완본은 없고 초간본은 이달충의 자손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그뒤에 없어졌다가, 다시 조선 헌종 2년(1836)에 ≪동문선(東文選)≫ 등에 실린 글들을 모아 편집하여 간행하였음. ​ 제정집 제1권 / 시(詩) 전부의 탄식 2수. 《청구풍아》에 보인다. 〔田婦歎 二首○見靑邱風雅〕 스무날 넘게 장맛비 이어져 오래도록 밥 짓지 못했는데 / 霖雨連旬久未炊 대문 앞 소맥은 이제 막 알알이 영글었네 / 門前小麥正離離 날이 개면 베려 했는데 잠깐 맑았다 다시 비 내리니 / 待晴欲刈晴還雨 배불리 먹으려고 날품 팔았으나 또다시 굶주리네 / 謀飽爲傭飽易飢 또〔又〕 지아비는 홍건적에 죽고 아들은 변방 지키러 나가 / 夫死紅軍子戍邊 홀로된 이 몸의 생활은 참으로 쓸쓸하여라 / 一身生理.. 2022.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