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학계에서 숨기는것 중 하나가 조선의 섬중 하나인 가도는 명나라 모문룡 한테 뺏겼었다. 다시얻게된 시기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수군에 의해 가도에 주둔하고 있던 명나라 1만여명을 쳐서 명나라 도독 심세괴를 이기고 청나라 장수 마부달에 의해 다시 얻을수 있었다. 한국 사학계에서 가도는 숨기고 최영의 제주도 정벌은 부각시키는 이유는 바로 자주성이다. 가도는 청나라에 의해 되찾을수 있었고, 제주도는 고려 스스로 해냈다. 청나라 수군아니면 평생 되찾지도 못했던 거다.
※ 가도는 15년이나 명나라 섬이었다.
1. 모문룡의 가도 주둔 - 1622
2. 가도에 주둔하고있던 명나라군들의 행패
3. 가도에 주둔하고있던 명나라군들의 괴멸 - 1637
1.) 광해군일기[중초본] 183권, 광해 14년 11월 11일 계묘 2번째기사 1622년 명 천계(天啓) 2년
모장이 가도로 들어 가다
철산 부사(鐵山府使)가 치계하였는데, 모장(毛將)이 뜻밖에 배를 타고 가도(椵島)로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이후로 요동 백성들이 모두 섬 안으로 들어가 집들이 많아져서 하나의 도회지가 되었다. 그리고 동쪽 남쪽의 상선들이 잇달아 왕래하고 바다 부근의 초목이 모두 땔감으로 없어졌다. 가도를 피도(皮島)·직도(㮨島)라고 불렀었는데 이때 모문룡이 운종도(雲從島)로 고치어 자기 이름에 맞게 하였다. 】
2.) 인조실록 28권, 인조 11년 9월 25일 갑인 1번째기사 1633년 명 숭정(崇禎) 6년
가도의 천총 하국주가 상원현에 와서 소란을 피우다
가도의 천총(千摠) 하국주(夏國柱)가 자기집 장정 80여 명을 거느리고 상원현(祥原縣)에 도착하여 갑작스레 민가로 들어가 재물과 가축을 약탈하면서 주민들을 때려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현감 김적(金迪)이 달려가 이를 금지시키자 하국주가 성이 나 그 졸개들을 풀어 활을 쏘기도 하고 칼을 빼들며 그를 앞으로 나서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타고 있던 말까지 약탈하고 또 민가의 마소를 빼앗아 갔다.
3.) 인조실록 34권, 인조 15년 4월 14일 계미 3번째기사 1637년 명 숭정(崇禎) 10년
가도가 청 나라에 의해 함락되다
청나라 장수 마부달(馬夫達)이 주사 70여 척을 이끌고 와서 가도를 격파하였다. 도독 심세괴(沈世魁)가 굽히지 않고 싸우다 죽었으며 군병도 사망한 자가 1만여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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