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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

병자호란 강화도에 있던 조선인들

by afsefe 2022. 12. 20.

여기에 적혀있는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부인과 자살할려고 했는데 부인만 죽이고 자신은 살아남아 나중까지 잘살았다고 들었다.

※ 한수재선생문집 제25권 / 정비(庭碑)

강화(江華)의 충렬사(忠烈祠) 정비

이때에 원임 의정부 우의정 선원(仙源) 김 선생 상용(金先生尙容)이 기필코 나라를 건지지 못할 것을 알고 탄식하기를 “종사와 원손이 여기에 있으니, 여기가 바로 내가 죽을 곳이다.” 하고는, 일이 매우 급하게 되자, 남성(南城)의 성루(城樓)에 올라가 화약을 깔고 앉아 분신자살하였다. 그리고 전 공조 판서 이공 상길(李公尙吉)은 이때 성 밖 10리쯤 되는 곳에 우거하고 있다가 성 안으로 달려 들어와 묘사의 신주에 곡하고 순절하였다. 전 돈녕부 도정 심공 현(沈公誢)은 집안사람이 배를 준비하고서 바다로 도피하기를 울며 청하였으나 듣지 않고 북향 사배한 다음 손수 유소(遺疏)를 쓰고 부부(夫婦)가 함께 자결하였다. 전 사헌부 장령 이공 시직(李公時稷)은 유사(遺詞)를 써서 하인에게 주고는 사복시 주부 송공 시영(宋公時榮)과 약속하고 관(棺) 두 개를 사서 두 구덩이를 파고 함께 자결하였다. 시강원 필선 윤공 전(尹公烇)은 적에게 욕설을 하며 굴하지 않아 살해되었다. 전 의금부 도사 권공 순장(權公順長)과 성균관 생원 김공 익겸(金公益兼)은 스스로 군졸의 항오에 편입하여 남문의 성첩을 지키다가, 김 상공이 분신하려면서 손을 내저어 가라고 하였으나 가지 않고 김 상공과 함께 화염 속으로 들어가 자살하였다. 본부(本府)의 천총(千摠) 구공 원일(具公元一)은 강 언덕에 서서 도주하는 김경징 등에게 욕설을 하고는 분개하여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본부의 중군(中軍) 황공 선신(黃公善身)과 본부의 천총 강공 흥업(姜公興業)은 패잔병을 인솔하여 강나루를 차단하고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 병자호란 강화도 전투

https://iece12345.tistory.com/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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