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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묄렌도르프 의 조선략기

by afsefe 2023. 1. 29.

독일인 묄렌도르프는 조선에 입국하여 외교고문을 맡았다. 그 와중에 조선략기(朝鮮略記)라는 책을 썼는데 거기에 "조선왕은 청황제의 노복(奴僕)이다" 라고 써놨다. 이같은 글에서 그당시 외국인 눈에 청나라와 조선관계가 어떻게 보였는지 전적으로 보여준다. 

 

※奴僕 [ 노복 ] 사내종 

※坤殿 [ 곤전 ] 왕비(王妃)

윤치호일기 제1권(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1884년>1월 28일~2월 26일(음력 1884년 1월 4일~1월 30일)>6일(10일, 수, 맑음, 삼가다) 

6일(10일, 수, 맑음, 삼가다)

공사관에서 지내다.

밤에 예궐하여 뮐렌도르프가 간행한 『조선략기(朝鮮略記)』에 “조선왕은 청황제의 유명무실한 노복(奴僕)이다”라고 한 구절이 있음을 아뢰었다. 주상께서 처음에 노한 빛을 띠셨다. 곤전(坤殿)께서는 내가 이 같은 일을 번거롭게 아뢰는 것을 싫어하는 기색이 있으셨다. 인하여 아래 구절에 무슨 말이 있는가를 물으셨다. 아뢰기를, “아래 구절에는 그러나 중국인은 그 내정에 간섭하려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곤전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윗 구절은 아래 구절을 이끌어 내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상께서 곤전이 이같이 말하는 것을 보더니 다시는 감히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아. 이로 미루어 볼 때 국사는 다된 것이다. 어찌 한심스럽지 않은가.

대저 우리나라의 경위로 말할진대, 서자(庶子)라 하면 누가 그 첩의 자식임을 모를까마는 서자라 부르면 노하지 않고 첩의 자식이라 부르면 좋아하지 않는다. 하인이라 하면 누가 그 노예임을 모를까마는 하인이라 하면 노하지 않고 노예라고 부르면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때때로 이로 인하여 싸움이 일어난다. 또 속국이라 하면 누가 그 왕이 그 황제의 노예임을 모를까마는 속국이라 부르면 오히려 용서할 수 있으나 노예라고 부른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집 사람이 첩자식이라 부른다거나, 혹은 아무개는 아무집의 노예라 부른다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아무 나라 왕은 아무 나라 황제의 노예라 부르는 것은 당사자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족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자집의 하인이 되어, 하인집의 하인이 되어, 속국왕의 신민이 되어, 그 주인과 그 나라의 잘못을 감추고, 그 주인과 그 나라를 빛내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스스로 그 주인 부르기를 아무개 첩자식이라든가, 아무개는 아무개집 노예라든가, 아무개 왕은 아무 황제의 노복이라고 부른다면 도리에 어긋나고 예절을 잃음이 이보다 심할 바가 없는 것이다. 사사로운 경우로 말한다면 마땅히 매질을 하여 쫓아내야 할 것이며 공적으로 말한다면 유배를 하거나 주살을 해야 옳은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와 청국과의 관계는 5대주 사람들이든, 삼척동자이든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지금과 옛날을 견주어 볼 때 사세가 많이 변하였다. 옛날에는 속방(屬邦)이 되어 그 밑에서 만족히 지내는 것은, 비단 사세가 그렇게 하였을 뿐 아니라 또 나라를 지키는 한 가지 방책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종주국(宗主國)을 각별히 섬기고 옛 법규를 지키는 것은 비단 일에 무익할 뿐 아니라 도리어 반드시 나라를 망치고야 말게 된다.

그리고 옛날에는 정성을 다하여 상국(上國)을 섬기어 오직 그 비호를 바랄 뿐이었으나, 오늘에 와서는 달게 여겨서 그 밑에 있으면 도리어 남으로부터 욕을 받게 된다. 모름지기 스스로 떨쳐 일어나는 데 힘을 써 독립을 기약하는 것만이 지금 우리나라의 급무인 것이다.

또 사실 외국이 우리를 돕고자 하는 바는 외국인이 우리와 청국과의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릇 외교상의 문자나 신문에는 각별히 우리나라의 독립권에 대하여 발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나라 신민이 되어 어찌 차마 스스로 ‘우리나라 왕은 청 황제의 노복이다’는 말을 하고 이를 책에 적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가?

비유컨대 한 사람의 가복(家僕)이 기회를 보아 양민이 되고자 하여 의관을 정제하고 양민과 교유하고 있다고 하자. 그 친구도 또한 힘써 도와 평등하게 교제하고 힘써 그 본래 가벌(家閥)의 단점을 감추어 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그 가본(家本)을 알지 못한다고 하여 그리하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교우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조차 그 본래 가벌의 단점을 가려 주거늘 하물며 그 집 하인이 그 주인이 본래 아무개집 노복이었다는 말을 전파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와 같이 무례한 노복이 있다면 마땅히 벌을 주거나 쫓아내야 할 것이다.

금번 목씨의 책에는 이 같은 무례한 말을 적어 사방에 전파하고 있으니 어찌 부끄럽고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혹은 말하기를 “그렇지가 않다. 목씨가 이것을 쓴 것은 유명무실하다는 말로 스스로 우리나라의 내치와 외교의 자주하는 뜻을 발명하려는 것이다”고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 외에도 허다한 어투로 능히 우리나라 체면을 빛낼 수 있고 우리의 자주됨을 밝힐 수 있을 터인데, 왜 먼저 “조선은 청국의 유명무실한 속국이다”고 말하지 않고 하필이면 “조선왕은 청황제의 유명무실한 노복이다”고 하였는가.

폐일언하고 내가 이를 아뢰기 전에도 우리 왕과 왕후가 간사한 것을 가까이하고 바른 것을 멀리하며 작은 안정에 급급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이 말을 들었을 때도 개의치 않았으나 다만 신하의 직분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아뢴 것이었다. 곤전께서는 도리어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겸해서 내가 말을 만들어 사람을 해치려 하는 것으로 의심하고 계시다. 아아. 이로 미루어 보건대 국사의 가부(可否)를 가히 알 수 있다. 원통하고 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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