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4년(갑자년)>3월
1일 《토요일》 맑고 몹시 추움.
서울 집이다. 아내가 아프다. 성홍열일까? 기선이도 아프다.
김영조(金永祚)가 하나루 페리(Hanaru ferry)로 건너다가 22일(?)에 익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영조는 내 이복 여동생의 장남이다. 우리 의붓어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영조를 위해서 농경지 등 상당히 많은 생계수단을 마련해주셨다. 영조는 곧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렸고, 1915년 내가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는 극도로 궁핍한 상태가 되어 □천(川)에서 어느 집 행랑이나 하인방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영조와 그의 식솔을 용혈리(龍穴里)로 데려와서 집을 마련해주고 1년에 쌀 25가마니씩을 연금으로 주었다. 다행히 영조는 잘 지냈다. 지금 영조는 갔지만, 난 그의 처와 자식들을 돌보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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