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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윤치호 일기 - 의친왕 이강

by afsefe 2023. 3. 21.

의친왕 이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현재 사학계에서는 이씨왕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항일 정신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있다. 그때문에 이씨왕족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의친왕 이강은 1899년(광무 3) 미국으로 유학가기도 했으나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교에서 미국인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 으로 옮겨가 공부했다. 그래서 의친왕의 약력을 보면 대학교가 두개 쓰여있다.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1월 

14일 《금요일》 아침에 안개 끼고 비가 조금 내림. 그 뒤 갬.

감기가 상당히 많이 나았지만 아직 외출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지는 못했다.

의친왕이 이 나라를 떠나려고 시도하다가 의주에서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근에 조금 나아졌다면 몰라도, 의친왕은 인격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운동의 대의명분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친왕이 선동가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선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들 가운데 가장 불쾌한 사람에 속하는 정기준(鄭圻俊)이 찾아와서 이자 없이 1,000엔을 빌려달라고 3시간 30분 동안이나 성가지게 졸라댔다.

고베YMCA의 스완(Swan) 씨가 F. M. B.(브로크만) 씨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註 143

: 의친왕 이강(1877~1955)은 고종황제의 다섯 번째 아들로 귀인 장씨의 아들이다. 1919년 11월 10일 대동단 인사들과 연계해 상하이로 탈출해 독립운동에 나서려 했으나, 만주 안동에서 발각되어 송환되었다. 이 사건으로 대동단 지도자인 전협, 최익환 등이 체포되었고, 대동단 조직은 와해되었다.

註 144

: 이강은 성격이 호탕하고 대범해 풍류를 즐기는 멋쟁이였다고 하는데, 윤치호는 이 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강에 대해서는 당시의 왕족 중 가장 똑똑하고 제왕 기질이 있었다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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