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의 허례허식은 결혼식 이나 장례식 같은 관혼상제에 많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0월
8월 《금요일》 화창한 날씨.
이 씨의 사무실에서 푹 쉬었다. 이른 아침을 먹은 뒤 인력거를 타고 고모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양으로 갔다.
장지가 고모님 댁 근처라 장례행렬이 그리 멀리까지 가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곡소리도 굉장히 컸다. 물론 이 곡소리의 대부분은 남을 의식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제사상을 차린다. 500여 명의 문상객에게 하루 세 번 식사 대접을 한다. 조선인은 종종 장례비용 때문에 파산하고 만다. 요컨대 조선인의 장례식은 의미 없는 의식, 눈물 없는 애도, 분수에 넘치는 비용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유학자들은 상주를 되도록 끔찍하게 보이게 만들려고 머리를 쥐어짜내었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아이들은 부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바보들 같으니! 밤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윤치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의 중국식 과장법 (0) | 2023.03.24 |
---|---|
윤치호 일기 - 의친왕 이강 (0) | 2023.03.21 |
윤치호와 김영조 (0) | 2023.03.16 |
조선 선비의 모습 (0) | 2023.03.15 |
조선인 으로서의 산업 (0) | 2023.03.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