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을미년(1595)
7월 21일 (임진)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렸다. [양력 8월 26일]
우후가 들어온다고 들었다. 식사를 한 뒤에 태구련(太九連)․언복 (彦福)이 만든 환도를 충청수사․두 조방장에게 각각 한 자루씩 나누어 주었다. 저물 무렵에 아들 울(蔚)․회와 우후가 같은 배로 섬 밖에 이르러 아들들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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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보승격을 앞두고 있는 이순신 장도, 그러나 지금도 위조 논란은 여전하다.
지금 있는 이순신 장도에는 1594년 태귀련(太貴連)과 이무생(李茂生)이 만들었다고 쓰여있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장도와 저 난중일기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내용이 일치하는건 1795년에 쓰인 난중일기 전서 내용과 일치한다. 전서 내용을 보면 난중일기 전서 1795년 "검명이 있는데 장검 1쌍에 나누어 새겼다. 검명은 공(충무공)이 쓴 글씨이고 지금 공의 후손집에 있다" 라고 쓰여 있고 시구 내용도 일치한다. 내가 그전에 앞서 쓴글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후대에 쓰여진 기록은 안맞는게 많아서 사료적 가치가 떨어진다, 이순신 장도 같은 경우도 훗날에 위조된후 이충무공 전서 간행될 때와 맞물려서 기록된거다. 글귀 위조하기야 쉽다. 나중에 칼위에 쓰기만 하면된다. 애초에 팔사품도 가짜인데 저게 진짜라는 보장은 전혀없다. 애초에 유물은 양식 등을 이용해서 연대측정이 가능하다. 연대측정 하면 1700년 시기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걸로 나올거다. 애초에 그당시 조선인들 기술력으론 저렇게 못만든다. 괜히 일본도가 최고라고 하는게 아니다. 조선인들이 따라해봐야 날부분 마감처리도 엉망이겠지,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조선 도검 기법이 어느정도 남아있을게 뻔하다.
가짜라는 세가지 이유를 들자면
첫째적으로 난중일기 내용과 안맞는 이유를 설명해야 된다. 만든사람이 태구련 인지 태귀련 인지 자기 이름도 틀릴리가,
두번째로 저 장도는 장식용이다. 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실전용 도를 안만들고 장식용을 만들 이유가 없다. 일본도를 상대할수 있는 조선도를 만든다면서 장식용이라니, 이게 가짜라는 두번째 이유다.
세번째로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 장도를 본따서 만들고 있었다면 다른 유사한 사례들도 보여줘야 된다. 그러나 만든 사례는 없고 권응수와 곽재우는 일본 장도를 노획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팔사품도 가짜인데 한번 거짓말 쟁이는 두번도 하는거고 세번도 하는거다.
이순신의 가짜 팔사품 https://iece12345.tistory.com/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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