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왜영 사기 장계 사건은 난중일기 전서에 실록 추가분으로 기록되어있다. 한국 국사학계에서는 크게 다루진 않지만 그당시 조정을 우롱했다며 파문이 컷다. 이순신은 김난서와 안위의 공을 자기가 계책을 세워한것처럼 사기친것이다. 임진년 이후 거사없이 놀고만 있다 보니간 초조해서 그랬던걸로 보인다. 부산왜영은 후방거점으로서 부산으로 오는 보급물자는 전혀 못막고 있었다. 부산을 점령하는것이 수군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 이었다. 글이 길어서 안읽겠다면 맨 밑에서 세줄 부분은 읽어보도록 하자 그당시 선조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수 있다.
※ 난중일기 전서
1596년 기축일 12월 27일 (음 2월 12일)
「선조실록」에서“신의 장수 가운데 계려(計慮)가 있고 담력과 용기가 있는 사람 및 군관ㆍ아병(牙兵)으로 활을 잘 쏘고 용력이 있는 자들이 있는데, 항상 진영에 머물면서 함께 조석으로 계책을 논의하기고 하고, 그들의 성심을 시험하기도 하고 함께 밀약하기도 하였으며, 또 그들을 시켜 적의 정세를 정탐하게도 하였다.
그러던 터에 거제현령 안위 및 군관 급제 김난서, 군관 신명학이 여러차례 밀모하여 은밀히 박의검을 불러 함께 모의했다.
그랬더니 박의검은 아주 기꺼워하여, 다시 김난서 등과 함께 간절하게 지휘하면서 죽음으로 맹세하고 약속하였다.
같은 달 12일 김난서 등은 야간에 약속대로 시간되기를 기다렸는데, 마침 된하늬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바람결에다 불을 놓으니, 불길이 세차게 번져서 적의 가옥 1천 여 호와 화약 창고 두 개, 군기와 잡물 및 군량 2만 6천 여 섬이 든 곳집이 한꺼번에 다 타고, 왜선 20여 척이 역시 잇따라 탔으며, 왜놈 24명이 불에 타 죽었다.
이는 하늘이 도운 것이지만, 대개 김난서가 통신사의 군관에 스스로 응모하여 일본을 왕래하면서 생사를 돌보지 않았기에 마침내 이번 일을 성공한 것이다.
안위는 평소 계책을 논의하다가 적에 대해 언급할 경우 의분에 분개하여 자신이 살 계책을 돌보지 않았으며, 그의 군간 김난서와 신명학등을 거느리고 적진으로 들어가 갖가지로 모의하여 흉적의 소굴을 일거에 불태워 군량ㆍ군기ㆍ화포 등 제구(諸具)와 선박 및 왜놈 서른네 놈을 불태워 죽게 하였다.
부산의 대적을 비록 모조리 다 죽이지는 못했지만 적의 사기를 꺾었으니 이 역시 한가지 계책이었다.
일본을 왕래하는 경상수영 도훈도 김득이 부산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날 밤 불타는 모습을 보고는 이 달 12일 밤 열 시쯤에 부산의 왜적 진영 서북쪽가에 불을 놓아 적의 가옥 천 여 호 및 군기와 잡물ㆍ화포ㆍ기구ㆍ군량 곳집을 빠짐없이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자 왜적들이 서로 모여 울부짖으며 ‘우리 본국의 지진 때에도 집이 무너져 사망한 자가 매우 많았는데, 이번에 이곳에서 또 화환(火患)을 만나 이 지경이 되었으니, 우리가 어디서 죽을지 모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또한 그럴 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안위ㆍ김난서ㆍ신명학 등이 성심으로 힘을 다하여 일을 성공시켰으니 매우 가상하며, 앞으로 대처할 기밀의 일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니 각별히 논상하여 장래를 격려하소서” 라고 부산 왜영을 불태운 사실을 장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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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84권, 30년(1597 정유 / 1월 27일(무오) /
수군의 작전 통제권을 가지고 대신들과 논의하다
상이 이르기를,
“나는 이순신의 사람됨을 자세히 모르지만 성품이 지혜가 적은 듯하다. 임진년 이후에 한번도 거사를 하지 않았고, 이번 일도 하늘이 준 기회를 취하지 않았으니 법을 범한 사람을 어찌 매번 용서할 것인가. 원균(元均)으로 대신해야 하겠다. 중국 장수 이 제독(李提督)이하가 모두 조정을 기만하지 않는 자가 없더니, 우리 나라 사람들도 그걸 본받는 자가 많다. 왜영을 불태운 일도 김난서(金鸞瑞)와 안위(安衛)가 몰래 약속하여 했다고 하는데, 이순신은 자기가 계책을 세워 한 것처럼 하니 나는 매우 온당치 않게 여긴다. 그런 사람은 비록 청정(淸正)의 목을 베어 오더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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