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는 일본여자와 결혼했다면 훨씬 행복하게 살았을 것
오해 없도록 말하는데 1894년에 윤치호 아내는 마애방 중국여자 다. 여기에 나오는 늙은 하녀또한 청국의 중국여자다. 윤치호 아내 마애방은 1905년에 아이를 낳다 죽었고, 그후 재혼한 여자가 그 성질 더러운 조선여자 백매려다.
2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2(한국사료총서 번역서2) > 1894년(조선 개국 503년, 고종 31년, 갑오년) > 7월
19일 《목요일》 산들 바람 부는 더운 날.
오늘 아침 『데일리 뉴스』에서 조선의 한성 주재 영국 영사와 그의 부인이 하루 이틀 전 큰길에서 한 무리의 일본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전보를 전하였다. 일본인들은 가끔 바보 같다! 영국은 이미 중국의 큰 우방으로서 일본이 그런 식으로 해쳐서는 안 된다.
중국이 전쟁을 결심했다는 보도다. 일본은 지나친 자만심 때문에 열강의 동정을 많이 잃은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군사 행동에 1,000만 엔이 쓰였다고 한다. 일본은 어디서 그 비용을 보상 받을 것인가! 의문스럽다!
우리 집 하녀는 늙었지만 내가 목욕을 하고 있을 동안에는 욕실에 들어와 보지 않는다. 이러한 수줍음은 대조적으로 내가 나가미 씨(Mr. Nagami, 永見) 집에서 몇 년 전 목욕을 할 때 ‘등을 밀어 드릴까요?’라고 했던 어여쁜 하녀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비록 남자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는 하지만(어떤 일본 여자도 이런 일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거짓말 잘하고 남을 잘 속이고 뻔뻔한 중국 여성보다는 미소를 잘 짓고 예의 바르며 붙임성 있는 일본 소녀가 더 좋다. 나로서는 우리 집 늙은 하녀에게 깨끗이 하라고 잔소리 하는 것에 지쳤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지저분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중국 사회에서 가장 깔끔한 사람 중 하나다. 아내와 내가 그녀에게 부엌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게 하고 보기도 흉한 더러운 물건들-낡은 신발 등-을 내다 버리라고 하자 그녀가 펄펄 뛰었다. 아내의 말처럼 그 정도나마 할 수 있는 다른 하녀를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다른 하인들은 늘 쌀 따위를 훔치는데 반해 자기 집도 없는 그녀는 적어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나의 학교 친구 중 하나인 콩치위(江載祐)가 오늘 밤 내방했다. 그를 보게 되어 매우 기뻤다. 그는 국립의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그 전문직을 싫어한다.
얼마 전 나는 내가 진실로 아끼는 중국 친구 중 하나인 량리조(Liang lee cho)에게 선생으로서 본넬 교수와 로에 씨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그는 로에 씨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로에 씨는 매우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반면, 본넬 교수는 게으르지, 내가 대학교에 있는 동안 그는 한 번도 수업을 정각에 시작하지 않았어.”라고 하였다. 참 좋은 교훈이다.
'윤치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치호와 유학자 (0) | 2023.11.19 |
---|---|
뉴욕에 간 윤치호 (2) | 2023.11.19 |
윤치호의 걱정 (0) | 2023.11.19 |
윤치호의 아내 13 - 이기심 (0) | 2023.11.19 |
윤치호 각상(各床) (1) | 2023.1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