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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

뉴욕에 간 윤치호

by afsefe 2023. 11. 19.

맨 밑 11번 보면 민비 시해에 대하여 미국인들은 아무 관심도 없던 모양이다.

 

3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3(한국사료총서 번역서3)   >   1896년(조선 개국 505년, 고종 33년, 병신년)   >   5월   >   9일 《토요일》

뉴욕 그리고 루카니아호(S.S. Lucania)에서.

오후 1시에 배를 탔다. 뉴욕에서의 이런 저런 기억들.

 

1.내가 이 놀라운 도시를 방문한 일이 꿈만 같다. 브로드웨이, 현수교, 거대한 상점들, 훌륭한 철도, 호화로운 호텔, 아름다운 카페, 널리 알려진 센트럴 파크와 리버사이드, 그리고 송판 오두막집, 월드빌딩, 시끄럽고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의 거리, 상점과 거리와 역 그리고 서점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의 물결,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아주 놀라운 꿈과 같았다. 단지 내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세계의 모든 것을 한 곳에 모은 이 도시의 다양한 양식과 삶의 모습을 조용히 돌아볼 시간을 더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짧은 3일 동안에 이 도시를 얼마나 보았고, 얼마나 들었으며, 얼마나 알겠는가?

 

2. 실로로브스키 부부(Mr. and Mrs. Silorovesky)가 우리에게 매우 친절히 대해 주었다. 그는 뉴욕 주재 러시아 총영사다. 그의 아내는 아름다운 멋쟁이다.

 

3. 워싱턴 주재 조선공사 서광범을 만나 기뻤다. 그는 양복을 입고 있었고 언제나처럼 멋쟁이였다. 그는 거의 매 시간마다 구두와 옷을 바꿔 입었다.

 

4. 브로크만(Brockman)을 만났다. 그를 만나 매우 기뻤는데 조용한 곳에서 둘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는 센트럴파크를 둘러 볼 기회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뉴욕을 서둘러 떠나야 하는 일정 때문에 그와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는 YMCA에서 일하고 있다. 캔들러(Dr. Candler)·호스(Hoss)·틸레트(Tillet)·램버스 박사에게 전보를 쳤다. 캔들러 박사만이 회답했다. 언더우드 박사의 동생을 방문할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다.

 

5. 감리교회의 문서부를 방문했다. 그러나 각 부를 둘러 볼 시간이 없었다. 아무도 나를 안내해주지 않았다. 차갑게 나를 맞는다.

 

6. 신문기자들이 벌처럼 바쁘다. 신문들은 매우 선정적이고 쓰레기 버리는 곳 같다.

 

7. 뉴욕에서는 웨이터들 말고는 모든 것이 바삐 움직인다. 사람이 굶는 경우는 둘이다. 하나는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멋진 호텔에 머무는 경우다.

 

8. 웃고 미소를 짓는 것은 행복하다는 표시다. 분명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우리는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순박한 원인 제공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 “자유의 나라” 후손들이 불손하게도 우리를 보려고 발광하는 그 모습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다.

 

9. 월도프 호텔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다. 돈만 있다면 누구나 그 안에서 모든 안락과 사치를 누릴 수 있다.

 

10. 뉴욕의 전 조선 명예총영사였던 프레이저씨(Mr. Frazer)가 우리를 방문했다. 그는 그 자리에 재임명되고 싶어 했다. 매우 우스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어떠한 명예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광범은 그 자리를 톰 언더우드(Tom Underwood)에게 주려고 한다.

 

11. 뉴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본을 칭찬하고 있다. 아무도 조선왕후의 운명에 대해 관심이 없다. 만일 일본이 왕후뿐만 아니라 왕을 포함한 궁중의 모든 사람을 살해했다 할지라도 세계는 일본을 더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한 일이 아닌 것이 성공처럼 여겨지고, 정의가 아닌 것이 힘처럼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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