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사학계에서는 광해군을 암군으로 찍어놨다. 그러나 어느순간에 광해군 재평가 과정을 거친후 뛰어난 군주로 미화했다. 그이유는 광해군 이었으면 병자호란 막을수 있었다는것이다. 그것은 조선인들이 자력으로 병자호란을 막아낼수있을것이다 라는 주장을 하기위해 광해군을 끌어들인것이다. 그러나 누르하치가 조선에 좋은 감정을 가주고있어서 그랬던것이다. 청태종 홍타이지였으면 사르후 전투의 죄를 묻고 쳐들어와서 광해군이 인조꼴 났을거다. 광해군이 뛰어난 외교가면 박근혜도 뛰어난 외교가 다. 애초에 박근혜 시절 광해군의 외교를 본받아야 된다고 뉴스기사에서 많이 났었다. 그러나 이씨조선 전기만 봐도 어디 본받을만한게 있단 말인가 , 광해군은 내치도 엉망인것이 균형적인 붕당정치를 못한것이 강제퇴위 이유가 되었다. 전쟁이후 왕실권위를 세운다며 궁궐이나 잔득 짓고있었다. 매관매직도 성행한데다. 민심도 엉망이었다. 광해군 이었어도 병자호란은 절대 못막는다. 초기 사학계에서 찍어놓은 암군이 맞다. 홍타이지가 인조에게 여러가지 압박을 한것은 보급문제로 쳐들어올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 홍타이지는 절대 용서 없다.
홍태주(홍타이지-청태종)
※광해군일기[중초본] 169권, 광해 13년 9월 9일 정미 2번째기사 1621년 명 천계(天啓) 1년
【홍태주는 누르하치의 셋째 아들이다. 항상 우리 나라를 침략할 의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형인 귀영개(貴盈介)가 막았다. 뒤에 참호(僭號)를 이어받았다. 】
※선조수정실록 30권, 선조 29년 2월 1일 무술 3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김희윤이 건주에 들어가 폐물을 주니 누르하치 형제가 환영하다
김희윤(金希允)이 다시 건주(建州)에 들어가 폐물(幣物)을 주니, 누르하치[奴兒哈赤] 형제가 잔치를 열고 환영하였다. 희윤 등이 조선에 대해서 말썽을 일으키지 말라고 타이르니, 누르하치 등이 모두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고 사죄하고 다시 조선과 우호를 위한 동맹을 맺자고 청하였다. 희윤이 ‘각자 자기의 국경만 지키면 되지 우호동맹을 맺을 필요는 없다.’ 하니, 누르하치는 그 이상 말은 하지 않았으나 희윤을 대하는 태도나 말씨가 전보다 거만스러워졌다. 희윤은 두려운 마음이 들어서 말을 빨리 달려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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