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실록 기사글을 보면 여자들이 신사에 가서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유생들이 몽땅 다 불태워버려서 원래 일본처럼 신사가 맡고 있었던 기복신앙은 불교로 돌아가게 되어 여자들이 사찰에 가서 소원을 빌게된다.
※ 제·양(齊梁) : 남조(南朝) 시대.
※ 무지개[螮蝀] : 사기(邪氣)를 뜻함.
※ 사녀(士女) - 선비의 아내
명종실록 32권, 명종 21년 1월 26일 무오 5번째기사 1566년 명 가정(嘉靖) 45년
윤의중 등이 개성부의 유생을 나추하지 말 것을 상차하다
홍문관 부제학 윤의중(尹毅中) 등이 상차하기를,
"세교가 밝지 못하면서부터 인심이 괴이한 것을 좋아하여 산꼭대기나 물 구비에 많은 음사를 지어 놓고 귀신을 숭배하는 풍속이 마치 제·양(齊梁)의 비루함과 같으니 이 비록 민속의 이미 고질화한 폐단이나 어찌 청명한 세상에 무지개[螮蝀]가 용납되겠습니까. 음사의 설치가 한두 군데가 아니나 송도가 더욱 심하여 사전(祀典)에 기재된 이외에도 토목으로 신상(神像)을 만들고 당우를 지어 보호하므로 경사(京師)의 사녀(士女)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재백(財帛)을 소비하기를 마치 진흙이나 모래처럼 여기고 있으니 귀신에게 경만하고 아첨하는 일은 차치하고라도 풍교(風敎)를 패상(敗傷)시킴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는데, 어찌 왕교(王敎)로 단호히 단절시켜야 하고 유자(儒者)로서 극력히 배격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답하기를,
“개성부 유생들의 범행이 만약 성묘 때 나인이 설치한 신사를 타파하였던 광생만 같다면 내가 어찌 나추를 명하였겠는가. 조종조 이래 있었던 여러 신사(神祠)를 하루 저녁에 죄다 소각해 버렸기 때문에 대비전에서 중관을 보내 금지시켰으나 유생들이 사명을 무시하고 죄다 분탕하였으니, 초야의 젊은 무리들의 무례 불경함이 어찌 이처럼 심할 수 있겠는가. 불가불 금부에 잡아들여 광동들로 하여금 국위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어찌 음사를 위하여 제생을 치죄하려 하겠는가. 제사를 수리하려는 일은, 예전부터 설치되었던 것을 지금 폐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열화된 불교 https://iece12345.tistory.com/206
※ 고려시대 신사 https://iece12345.tistory.com/297
※ 남치근이 없애버린 신사 https://iece12345.tistory.com/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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