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 10년 1361년 10월에 총 20만의 홍건적은 10만병력을 동원해 고려에 칩입 했다. 개성을 함락 했으나 고려군 20만 으로 개성에 있던 10만1백명의 홍건적을 전멸 시키고, 압록강에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홍건적 잔당 10만명 을 압록강 너머로 격퇴 시켰다. 한족과 의 대대적인 승부에서 고려군이 승리한 셈이다. 그러나 개성까지 함락당해 고려쪽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조선실록 - 태조총서
겨울에 홍건적(紅巾賊) 위평장(僞平章) 반성(潘誠)·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파두번
(破頭潘) 등 20만 군사가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서북 변방에 함부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글을 보내[移文]기를,
“군사 1백 10만 명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가니 속히 맞아 항복하라.”
※ 고려사
공민왕 10년 1361년 10월
정유일 - 홍건적[紅賊]의 자칭 평장[僞平章]인 반성(潘誠)·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 등이 거느린 10만이 넘는 적도들이 압록강을 건너 삭주(朔州 : 지금의 평안북도 삭주군)를 침구했다.
11월
신미일 - 이날 적군이 개경을 함락한 후 수 개월 동안 진을 치고 머물면서 말과 소를 죽여 그 가죽으로 성을 쌓고는 물을 뿌려 얼음판을 만들어 아군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 또 남녀 백성들을 죽여 구워 먹거나 임신부의 유방을 구워 먹는 등 온갖 잔학한 짓을 자행했다.
공민왕 11년 1362년 1월 갑자일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황상(黃裳)·한방신(韓方信)·이여경(李餘慶)·김득배(金得培)·안우경(安遇慶)·이구수(李龜壽)·최영(崔瑩) 등이 군사 20만을 인솔해 동교(東郊)에 진을 친 후 총병관(總兵官) 정세운(鄭世雲)이 장수들을 독려해 개경을 포위하게 했다.
을축일. - 새벽 무렵 각 장수들이 사방에서 공격을 개시했는데, 우리 태조(太祖 : 이성계)는 휘하의 친병(親兵) 2천 명을 거느리고 맹렬히 공격하여 먼저 성에 올라가 적을 크게 격파했으며 적 괴수(魁首) 사유(沙劉)와 관선생(關先生) 등을 죽였다. 저희끼리 밀고 밀치다 죽은 적들의 시체가 가득했고 10만이 넘는 적들의 머리를 베었으며 원나라 황제의 옥새(玉璽)와 금은보화, 금·은·동으로 만든 인장, 무기 등의 물품을 노획했다.
그 잔당인 파두반(破頭潘) 등 10여만 명은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도망쳐 버리니 적도들이 드디어 평정되었다.
여름 4월
초하루 병자일. 요양행성동지(遼陽行省同知) 고가노(高家奴)가 홍건적의 잔당을 요격해 4천 명이 넘는 적을 죽이고 그 괴수 파두반(破頭潘)을 생포한 후, 사자를 보내 승전보를 올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공민왕 11년(1362) 임인년
- 고가노 는 원나라 사람이다. 즉 원나라 에서 홍건적 잔당을 공격 했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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