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신돈의 집은 조선중기 선조때 까지 남아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고려시대 건물이 많이 남아있었다는걸 알수있다. 물론 임진왜란 이후 다 사라졌겠지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문인 차천로(車天輅)가 지은 야담 수필집
※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 - 차천로(車天輅) 찬
신돈(辛旽)의 집은 아직도 층루(層樓) 한 구역이 남아 있어, 그 전에는 혜민국(惠民局)[병원]이 되었더니, 심락(審樂)이 여기에서 살았다. 이창(李敞)이 도사(都事)가 되었을 때, 그 위층을 헐어 합쳐서 한 채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상평창(常平倉)[국가 창고]이 되었다. 나의 아버지 집도 그 앞에 가까이 있었으므로, 내가 어릴 적에 그 누에 올라간 일이 있었다. 곳곳에 우묵하게 구부러진 방을 만들어 대낮에도 깜깜하였다. 이는 신돈이 요직에 있었을 때, 고의로 조정 관리들을 속여 폐간(狴犴 감옥. 옛날 감옥 문에 사나운 폐간을 그려 붙인 데서 나온 말)에 가두고 그들의 아내가 와서 애걸하게 되면, 신돈은 흰 말을 잡아 그 음경(陰莖)을 말려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 두었다가, 그들의 아내에게 술에 타 먹여 취하게 한 다음, 이 누(樓)에서 음행(淫行)을 저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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