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몽골도 못건드렸던 천연요새다. 고려 몽골전쟁 당시 고려 귀족과 고려왕은 강화도로 파천했다. 고려에 왔던 몽골 전병력을 동원해도 강화도만큼은 굳건했다. 그런후 조선반도에 다시금 위기가 닥쳤으니 여진족이 4만5천병력으로 침략한 병자호란이다. 당연히 강화도로 도망가야지, 조선왕족 및 일부 양반들이 강화도로 도망갔다. 그러나 철벽요새라고 믿었던 강화도는 어이없이 고작 청나라 군대 3천병력 한테 뚫려서 거기있던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가거나 죽었다. 원래 인조 또한 강화도로 피난 갈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찌된게 남한산성 보다 더 일찍 강화도가 점령 당했다. 그것도 고작 3천병력한테, 왜 이렇게 쉽게 그 천연요새라는 강화도가 무너졌을까, 그 최강이라는 몽골군도 손도 못댔을 정도였는데, 그이유는 방비를 전혀 안했다. 김경징 이라는 자가 강화도는 절대로 못건드린다고 생각해서 전쟁준비는 안하고 그저 기생끼고 술먹고 놀기만 했다. 조선인들은 언제나 이모양이다. 그저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거다.
※ 한수재선생문집 제25권 / 정비(庭碑)
강화(江華)의 충렬사(忠烈祠) 정비
숭정(崇禎) 병자년 겨울에 청 나라 오랑캐가 대거 쳐들어오자, 상이 장차 강도(江都)로 행행하려 하면서, 명하여 묘사(廟社)의 신주를 먼저 모시고 떠난 다음 동궁빈(東宮嬪)ㆍ원손(元孫)ㆍ대군(大君) 및 늙고 병든 군신(羣臣)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가도록 하고, 대가(大駕)가 뒤따라 출발하여 도성 남문(南門)에 이르렀을 적에 적의 초병마(哨兵馬)가 이미 서교(西郊)에 육박하였으므로, 상이 마침내 대가를 돌려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었다. 이때 검찰사(檢察使) 김경징(金慶徵), 부사(副使) 이민구(李敏求), 유수(留守) 장신(張紳)이 강도의 일을 전담했었는데, 이들이 강도는 천연의 요충지이므로 믿을 만하다 하여 술이나 마시고 직무를 게을리 하여 전쟁에 대한 수비(守備)를 전혀 힘쓰지 않으면서, 혹 이를 충고하는 자가 있으면 번번이 기를 꺾어 모욕을 주곤 하였다. 그러다가 정축년 1월 22일에 적이 갑곶진(甲串津)을 건너 쳐들어오자, 김경징 등이 두려워 어쩔 줄을 모르면서 남의 배를 뺏어 타고 도주하였고 강도는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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