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종시대38

세종이 지은 누추한 집 거지처럼 사는게 미덕으로 잘못 알고있으니 우습다. 왕은 왕답게 위엄이 있어야 한다. 왕이 거지 같은 몰골을 하고있으면 비웃음만 살뿐이다. 거지 처럼 사는건 미덕이 아니다. 저런 짓거리 할시간에 어떻게 하면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잘살수 있는지 고민을 하도록 하자, 국민들에게 하등 도움이 안되니 말이다. 연려실기술 제3권 / 세종조 고사본말(世宗祖故事本末) 세종(世宗) ○ 임금이 경회루 동편에 남는 재목으로 별실(別室)을 지었는데, 돌 층대를 쓰지 않고, 또 짚으로 지붕을 올려 되도록 검소하게 한 후 늘 이곳에서 거처하였다. 문 밖에 짚자리가 깔려 있음을 보고 물으시기를, “이건 누가 한 짓인가. 비록 작은 물건이라도 내 명령이 내리기 전에는 안에 들이지 말라.” 하였다. ​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 .. 2023. 6. 9.
조선 세종 중국사신 영접 절차 2 조선 영조 중국사신 영접 절차 https://iece12345.tistory.com/220 한국 최고의 위인 세종은 중국 황제의 조무라기 다. 세종이 뛰어나다고 해봐야 중국이란 우물안에서 하수인 이였다. 이런 잔챙이가 최고 위인이라니 한국 수준을 보여줄 뿐이다. 세종 3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1월 19일(갑자) 2번째기사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고 부절과 고서를 받다 명나라 황제는 대감(大監) 황엄(黃儼)을 보내어, 정사(正使) 광록 소경(光祿少卿) 한확(韓確), 부사(副使) 홍려시 승(鴻臚寺丞) 유천(劉泉)과 함께 부절(符節)과 고서(誥書)를 받들고 와서 왕명(王命)을 전달하게 되므로, 채붕(綵棚)을 매고 잡희(雜戲)를 베풀어 영접하였다. 임금은 편복을, 조신(朝臣)은 조복을.. 2023. 5. 24.
세종시대 왕자를 폭행한 임수 조선 초기를 보면 왕실을 아주 하찮게 여기는 사건들이 많았다. 이 사건도 그중 하나다. 환관이 왕자에게 무례하게 대하며 능욕을 하고 폭행 까지 했다. 세종은 임수에게 곤장 1백대와 관노로 만드는 벌을 내렸지만 사면받았다. 1. 왕자를 폭행 하다. ※세종실록 20권, 세종 5년 6월 5일 갑인 3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환관 임수가 왕자를 능욕한 죄로 처벌 받다 환관(宦官) 임수(林秀)가 왕자(王子)를 모시고 글을 읽는데, 수(秀)가 왕자에게 무례하게 하여, 왕자가 미워하였는데, 수가 그로 인하여 왕자를 능욕(凌辱)하니, 왕자가 주먹으로 수의 뺨을 때렸다. 수도 역시 손으로 왕자의 어깨를 쳐서 흔적이 생길 정도였었다. 수를 의금부(義禁府)에 내려 심문하게 하였는데, 법으로는 교(絞)에 해.. 2023. 3. 23.
세종시대 권채 첩 살인사건 집현전에 소속해 있던 권채 란 양반이 그의 노비첩을 잔인하게 죽였는데 세종은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세종시대 보면 양반들이 부정부패 저질러도 세종은 잠시 귀양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여서 사용했다. 조선이란 나라를 보면 법위에 양반이 있는 나라다. 이런 나라는 법치가 바로설수 없다. 초기부터 이러다 보니 나중가서는 양반들이 사사로이 뇌물이 오고가고, 고리대를 하는등 부정부패가 심각해 진거다. ​ 1. 권채의 노비가 시체를 짊어지고가다. 세종은 권채를 옹호하고있다.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 8월 20일 을해 5번째기사 1427년 명 선덕(宣德) 2년 집현전 응교 권채의 잔혹한 행적에 대해 조사하라고 명하다 형조 판서 노한(盧閈)이 계하기를, "신(臣)이 길에서 한 노복이 무슨 물건을 지고 있는 것을 보았는.. 2023. 3. 19.
일본에 줄려고 했던 팔만대장경 한국에서 매양 한다는 소리가 일본에게 약탈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들이 언제부터 불교유물을 보물처럼 대했단 말인가, 실제로 알아보면 스스로 내주거나 아니면 조선인들이 팔아먹은거다. 고려불화도 일본이 대여안해준다고 뭐라할것도 없다. 애초에 진정한 보물이 뭔지도 몰랐던게 조선인들이었다. 세종은 팔만대장경도 일본에 전부 넘겨주자고 했었다. ※세종실록 22권, 세종 5년 12월 25일 임신 1번째기사 1423년 명 영락(永樂) 21년 일본 국왕의 사신 규주·범령 등 135명이 토산물을 바치다 임금이 대장경판은 무용지물인데, 이웃나라에서 청구한다 하여 처음에 이를 주려고 하매, 대신들이 논의하여 말하기를, "경판은 비록 아낄 물건이 아니오나, 일본이 계속 청구하는 것을 지금 만약에 일일이 좇다가, 뒤에 줄 수.. 2023. 3. 12.
조선의 속국 의식 절차 세종 시기 실록 글인데 이글을 보면 조선에서는 중국 속국으로서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수있다. ※ 성절 - 황제의 탄신일 ※ 하례 -축하의 예식 ※ 의주 - 의식의 절차 세종 3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4월 16일(경인) 3번째기사 예조에서 성절 하례 때의 절하는 자세에 대해 아뢰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성절(聖節)에 대한 하례(賀禮)는 속국의 의주(儀注)에 의하면, 왼쪽 무릎을 꿇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되어있다.” 고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2023. 2. 17.
중국 속국의 현실 일본 종이가 좋으니 만드는 법을 배워오고, 일본에 금이 많이 생산된다고 하니 명주와 모시를 가주고 살수있으면 중국에 갖다 바치자고 한다. 전쟁 한번 못하고 저렇게 된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세종실록 41권, 세종 10년 7월 1일 신해 3번째기사 1428년 명 선덕(宣德) 3년 일본에서 《백편상서》를 사오게 하다 임금이 대언(代言) 등에게 말하기를, "일본국(日本國)에 《백편상서(百篇尙書)》가 있다고 들었는데, 통신사(通信使)로 하여금 사오도록 하고, 또 왜국의 종이는 단단하고 질기다 하니, 만드는 법도 배워 오도록 하라." 하니, 지신사(知申事) 정흠지(鄭欽之)가 계하기를, "일본국에는 금이 많이 생산되니, 명주와 모시[苧布]를 가지고 가서 사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중국.. 2022. 12. 31.
고려왕조 초상화를 불태우는 성군세종 성군 세종은 고려시대 역대군왕 과 왕비의 초상화를 모조리 불태우게하고, 땅에 묻었다. 이성계의 왕비이자 왕자의 난때 희생된 이방석 , 이방번의 어머니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반신 초상화도 불태우게 했다. 현대에선 이런자를 성군 이라고 모시고 있다. 그러나 이 악덕의 대가일까 민족의 비극이였던 한국전쟁때 이씨왕조 역대 초상화는 영조 , 철종 , 이성계 어진 빼곤 지들 초상화도 다 불타 사라졌다. ​ ★도화원 [圖畫院] 고려 시대와 조선 초기에 그림그리는 일을 담당하였던 관청 ★정릉 [貞陵] 조선 태조의 제2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 ★반영(半影) 반신 초상화를 가리킨다. ​ ※세종실록 32권, 세종 8년 5월 19일 임자 9번째기사 1426년 명 선덕(宣德) 1년 도화원에 간수된 전조 역대 군왕·비주의 영자초도.. 2022. 12. 28.
세종시대 떼도적 세종시대는 소설 홍길동전 시대배경이 되기도 했던것 처럼 도적들이 많았다. 그저 고려말 처럼 하나하나 안쓴것 뿐이다. 세종 106권,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10월 9일(갑인) 1번째기사 도둑 없애는 방책을 의논하다.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에게 이르기를, “지금 도적이 많이 다닌다 하니, 이것은 내가 백성의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지 못해서, 그들이 살 곳을 잃은 때문이니 내 심히 부끄럽게 여기노라 예조 판서 김종서(金宗瑞)가 아뢰기를, “신이 듣자오매, 죽은 경성 부사(慶城府使) 김후(金厚)의 처가 토산(兎山)에 사옵는데, 밤에 떼도둑 40여 명이 말을 타고 갑자기 와서 포위하고 칼을 뽑아 든 놈, 몽둥이 가진 놈들이 김후의 처첩과 노비들을 협박하여 재산을 다 빼앗고 계집종을 .. 2022. 12. 24.
세종시대 발명품 외바퀴 수레 보기엔 저래도 종 2품 재상만 탈수 있었던 최고급 세단이다. 세종때 발명되고 나라 망할때 까지 관리들이 타고다녔다. 초헌(軺軒) - 종 2품의 관리가 타는 외바퀴가 달린 가마 ※세종실록88권 세종 22년 3월 23일 을축 2번째기사 1440년 명 정통(正統) 5년 상의원에 재상들이 탈 초헌과 일산을 만들게 하다 상의원(尙衣院)에 명하여 초헌(軺軒)과 일산[蓋]을 만들게 하였으니, 재보(宰輔)들에게 초헌을 타게 하려 함이었다. ※세종실록 89권, 세종 22년 4월 3일 갑술 2번째기사 1440년 명 정통(正統) 5년 영의정 황희와 우의정 신개에게 초헌을 주고, 2품 이상은 초헌을 타게 하다 영의정 황희(黃喜)와 우의정 신개(申槪)에게 초헌(軺軒)을 주고, 인하여 예조(禮曹)에 전지하기를, "이제부터는 이품.. 2022. 12. 22.
자국민을 불충죄로 죽인 세종대왕 책 -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 1 / 지은이 - 이방주 / 출판사 - 새미래북스 성군 세종은 소금 구워서 국가에 납품하는 김인발이 불충한 말을 했다고 능지처참 시켰다. ※ 염한(鹽干) : 염장(鹽場)에서 소금 굽는 사람 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1월 2일 임인 3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불충한 말을 한 전라도 나주의 염한 김인발을 능지 처참 시키다 의금부에서 계하기를, "전라도 나주염한(鹽干) 김인발(金仁發)이 지껄인 말은 죄가 불충에 관한 것이니, 능지 처사(凌遲處死)하는 율에 해당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능지 처사(凌遲處死) 죄인의 머리와 팔다리를 각각 베어 죽임. 이렇게 잔인한 형벌을 아무에게나 내릴 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무거운 대역죄를 지은 죄인에게 내.. 2022. 12. 20.
조선팔도 사냥 다녔던 세종 대동야승 기재잡기 1(寄齋雜記一) 역대 조정의 옛이야기 1[歷朝舊聞一] 세종 우리 나라의 예악 문물이 세종 때부터 융성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크게 갖추어졌으며, 여러 임금들이 잇달아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일찍이 세종 때의 주서(注書)의 《일기초(日記草)》를 보니, 상감께서 친히 양성ㆍ진위ㆍ용인ㆍ여주ㆍ이천ㆍ광주 사이를 사냥 다녔는데, 때로는 한달이 지나서야 돌아오셨다가 이튿날 또 떠나곤 하였다. 길가의 시골 백성들이 더러는 푸른 참외를 드리기도 하고 더러는 보리밥을 드리기도 하였는데, 그러면 반드시 술과 음식으로 답례하였다. 《일기》책머리에는 여섯 사람의 대언(代言)과 두 사람의 주서의 성을 죽 써 놓으면서도 그 이름은 쓰지 않았고, 좌대언(左代言) 밑에는 진한 먹으로 크게 써 놓.. 2022.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