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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12

민족정기 되살아나다 1.예언1967년 4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계획은 처음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은 "우량농지 훼손이 웬말이냐, 쌀도 모자르는 데 웬 고속도로 냐 , 차를 가진 부자들을 위한 고속도로다." 라고 하며 김영삼 , 김대중 두놈도 공사현장에 두러누워 반대시위를 했다. 경제관료들도 재정적 여건 때문에 농업이 우선이라며 반대 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다. "나라가 잘 살려면 공업이 우선이고 수출이 우선이다. 나라가 발전할려면 물류를 책임질 도로를 뚫어야 한다." 라고 말하며 경제의 대동맥을 건설하지 않고는 경제개발도 불가능 하다고 믿었다. 도로는 국가 발전의 기본 조건이다. 농업이든 공업이든 일단 수송이 되어야 한다. 로마 또한 유럽을 정복할수 있었던 것은 빠른 물자를 수송하고 원정을 떠날수.. 2024. 5. 20.
일제시대 조선 거지들 구세군은 개신교의 한 교파다. 조선시대 때는 거지들이 있건 말건 상관도 안했는데 적어도 일제시대 때는 거지 아이들을 위하여 이런 구호사업이라도 벌어지지 않았나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월> 20일 《월요일》 맑고 몹시 춥고 바람 붐. 섭씨 14도. 오전 11시부터 YMCA에서 근무했다. 2시부터 4시까지 흙먼지 바람이 불었다. 매서운 날씨다. 7시 30분에 교역자 간친회가 열렸다. 겨우 몇 사람만 참석했다. 구세군에서 일하는 장집(張執) 씨가 구세군이 버림받아 쓰레기통에서 살고 있는 소년들을 위해 시작한 구호사업에 대해 이렇게 간략히 설명했다. 지금까지 9세부터 16세까지 소년 26명을 대상으로 구호사업을 펼쳤다. 누더기를 걸친 아이들을 구세군 본부로 데.. 2024. 1. 20.
무토대사의 예언 무토대사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책을 쓰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했다. 그런데 그 예언들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저 갓본인 이라는 말밖에 할말이 없구나, 무토대사는 이책을 쓰면서 "지금 한국 시국에 경제 대통령을 뽑아야지 친북 대통령을 뽑으면 아떻게 하냐 멍청한 한국인 들아" 라고 말하고 있다. 문재인은 5년 재임 기간동안 한국의 수명을 50년은 단축 시켰다. 저출산, 고령화, 우영우 등으로 적화 통일은 더욱 빨라져 수십년후를 대처해야 한다.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의 책,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월간조선 2017.06.29. ‘최악의 대통령 문재인’ 무토 대사는 책에서 “북한 위협의 시기에 한국인은 친북반일 대통령을 선출했다”며 “내가 과거 만났을.. 2023. 10. 4.
일제시대 말기 상황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43년(계미년)> 5월 17일(계미년4월14일)《월요일》 흐리고 쌀쌀함. 정오에 화씨 68도. 서울 집. 오전 9시 기선과 함께 부암정에 갔다가 오후 5시 시내로 돌아왔다. 사람들(조선인들)이 속살거리는 말에서 올해도 기근이 들 것 같다고 공포에 겨워하는 데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 1. 농민들(조선인 농민들)에게 화학비료가 없다. ​ 2. 두엄더미를 만들 지푸라기가 없다. 지푸라기 한 올도 모두 군량미를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 3. 농사지을 노동력이 부족하다. 시골 청년들 다수가 일본 본토 및 기타 지역의 광산, 농장, 공장 같은 데서 필요한 노동력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 차출되었기 때문이다. ​ 4. 쌀이나 기타 곡식의 부족으.. 2023. 9. 8.
500년 동안 아무것도 한게 없는 조선왕조 갈란드 선생과 윤치호 https://iece12345.tistory.com/165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장에 많은 명언을 남겼다. 더욱 놀라운것은 지금 한국인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는것이다. 이번글은 조선왕조는 500년동안 아무것도 한게 없다고 꾸짖고 있다. 그리고 이씨조선 숭배자들은 사라지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지만 난 조선뽕들을 이해를 못하겠다. 윤치호 선생도 말했지만 조선이란 나라는 잘난거라곤 하나도 없고 흉잡을 것만 있다. 더욱 불행스러운 것은 조선시대의 병폐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나라를 병들게 하고있다. - 예) 상명하복 , 사농공상 , 좌식문화 , 문치 등 2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2(한국사료총서 번역서2)>1894년(조선 개국 503년, 고종 31년, 갑오년)>10월>8일(음력 11일.. 2023. 6. 27.
윤치호의 식민지 근대화론 500년동안 아무것도 한게없는 조선왕조 https://iece12345.tistory.com/333 여기에 쓰여있는 글을 보면 일제시대에 1. 농업이 발전했다. 2. 양반들만 글방에서 교육을 배웠는데, 일제시대에는 신분관계 없이 평등하게 교육을 배울 기회가 왔다. 3. 강에는 다리가 놓여지고, 길에는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외에도 최신 의료 시설과 공장들이 세워졌다. ​ 9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9(한국사료총서 번역서9)>1935년(을해년)>9월 29일《일요일》 사랑스런 날. 서울 집. 오늘이 숙모의 85회 생일이므로 우리는 역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 분은 조선에서 가장 복이 많은 여성 중 한 명이다. 조선에 일본 정부 설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총독부 당국에 의.. 2023. 6. 27.
조선시대 거지들 떠도는 거지에게 직업과 옷과 주거를 주지 못할망정 종이옷에 짚자리라니 대우가 말(馬)보다도 못하구나, 이 실록 글을 통하여 조선시대 복지 수준을 알수있다. ​ 숙종실록 31권, 숙종 23년 10월 17일 갑자 3번째기사 / 도로에서 유랑하는 거지에게 종이옷과 짚자리를 지급하게 하다 한성부(漢城府)와 진휼청(賑恤廳)에 명하여 도로에서 유랑하는 거지를 가려내어 지의(紙衣)와 짚자리를 각각 지급하도록 하였는데, 승지(承旨) 김홍복(金洪福)이 상소하여 청한 것을 따른 것이었다. 2023. 6. 4.
조선후기 성호사설 상업 성호이익은 상업을 안좋게 여기고 있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수준이 이정도면, 이 나라는 더이상 가망이 없었다는 걸 알수있다. 상업에 의해 거상이 생겨나면 양반들의 기득권이 흔들리기 때문에 조선 양반들은 상업을 억제한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켰다. 성호이익 [李瀷] 1681(숙종 7)∼1763(영조 39).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성호사설 제8권 인사문(人事門) 생재(生財) 대저 우리나라는 지역(地域)이 좁은데다가 물길이 사방으로 통하여 있기 때문에 경화(輕貨)가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돈[錢]을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였다. 국초(國初)에는 종포(綜布)와 저화(楮貨)를 사용하였었다. 지금 돈을 사용한 지 겨우 70년 밖에 되지 않았으나, 폐단이 더욱 심하다. 돈은 탐관 오리(貪官汚吏)에게 편리하고, 사치하.. 2023. 5. 22.
충혜왕의 소은병과 은화 유통 고려시대 은병화는 고액화폐로서 잘 이용되었다. 충혜왕 때는 소은병을 주조해서 휴대성이 간편화 되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서는 은화가 전혀 이용되지 않았으니 그 이유는 명나라에 막대한 금은 조공 때문이었다. 조선 이방원 8년에는 명나라에 막대한 금은 조공 때문에 은화유통을 금지 시켰고, 나중에 세종 1429년에는 조선팔도에는 금은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명나라에 거짓말을 해서 금광과 은광을 폐쇄한다. ※고려사절요 제25권 / 충혜왕(忠惠王) 신미 원년(1331), 원 지순 2년 ○ 새로운 소은병(小銀甁)을 사용하게 하였는데, 한 개가 오종포(五綜布) 15필(匹)에 해당하게 하였으며, 옛날에 만들어진 은병은 통용을 금하였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11권 / 정교전고(政敎典故) 전화(錢貨)와 면포(綿布)저폐(楮幣).. 2023. 4. 4.
고려시대 충혜왕의 상업 충혜왕의 공장 https://iece12345.tistory.com/253 충혜왕은 시전에 점포를 차리고 상업을 적극 장려했던 왕임과 동시에 최고의 거상이었다. 조선시대 왕중에 충혜왕 만한 인물이 나왔다면 그렇게 미개하게 망하진 않았을거다. 충혜왕은 이미 한국 사학계에서 뛰어난 왕으로 재평가 받았는데, 일부 자극적인 내용 때문에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색마로 저평가 받고 있다. 역사라는건 그당시 사관이 어떻게 적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고려사 충혜왕 후3년(1342) 임오년 무오일. 왕이 의성창(義成倉)·덕천창(德泉倉)·보흥고(寶興庫)의 베 48,000필을 내어 저자에 점포를 열게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혜왕 후3년(1342) 임오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8.30, 경인.. 2023. 4. 3.
고려시대 충혜왕의 공장 한반도 중세시대에 100명 넘게 일했던 공장이 있었으니, 고려말 충혜왕의 신궁이다. 비단 제직 공장을 만들어서 여공 126명 일하게 했던게 중근세 시대 한반도에 있었던 유일한 공장이었다. 그외에는 조선에서 상공업을 억누르다 보니 가내수공업에서 발전을 못했다. 반면에 근세시대 일본에서는 수많은 공장이 만들어 졌다. 충혜왕의 신궁은 고려사 글로 보건데 비단 제직 공장이자, 정미공장으로 보여진다. 마지막에 궁인 126명을 추방했다고 하니 공장 여공은 126명일것이다. 충혜왕의 후비는 총 네명이다. 임씨는 마지막 네번째 ※ 고려사 충혜왕(忠惠王) 후비 4. 은천옹주(銀川翁主) 임씨(林氏) 은천옹주(銀川翁主)임씨(林氏)는 상인 임신(林信)의 딸로 단양대군(丹陽大君)의 여종이었다. 사기그릇을 팔아 생계를 삼다가 왕.. 2023. 4. 2.
시부사와 에이이치 기념식 여기에 나오는 시부자와 자작은 시부자와 에이이치 로 보인다. 일본 근대 경제사회의 기초를 쌓아올린 인물로서 일본 경제의 아버지다. 상공업이나 억제했던 그당시 조선에선 나올수 없었던 인물이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막부의 신하에서 메이지 정부의 관리까지 되었다. 이후 관직을 그만두고 500여 개의 기업을 설립하면서 일본 자본주의의 뼈대를 세웠다. ※ 9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9(한국사료총서 번역서9)>1933년(계유년)>12월 11일《월요일》 사랑스러움. 추위. 서울 집. 오후 2시 시부자와 자작을 기리는 기념탑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장충단공원에 갔다. 그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메이지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인들이 조선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탑을 .. 2023.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