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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30

거란전쟁 양규 장군 현대 한국인들이게 전혀 안알려져 있다가, 이번 드라마로 알려지게된 고려시대 위인, 근데 그도 그럴것이 고려시대 이순신 이라고 불리면 딱 맞겠다. 그래서 강감찬 같은 위인에게 가려져 있던게 아닌가, 이순신도 한국에서 전혀 안알려져 있다가 박정희가 자신의 군부 정권 찬양할려고 성웅화 시켜주며 띄워준거다. 거란 임금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침공해서 강조가 이끌던 고려 30만 대군을 격파하고 개경을 함락 했다, 피난 중이던 고려 현종은 거란에 사신을 보내어 강화를 맺었고, 거란은 퇴군중에 양규 장군이 활약해서 싸웠다. 사로 잡혔던 고려 포로들을 구출하고 연전 연승을 거두면서 거란에게 데미지를 입히다가 마지막에 많은 화살을 맞고 죽었다. 이순신이 퇴군중인 왜군과 싸우다가 죽은것 처럼, 양규 장군도 물러나는.. 2024. 1. 9.
친구 사이가 아니였던 오성과 한음 승정원 일기 고종 10년 계유(1873) 9월 14일(기미) 맑음 자경전에 강관 조병창 등이 입시하여 《시전》을 진강하였다. 10-09-14[06] 상이 이르기를, “한음과 오성(鰲城)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친밀하게 사귀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러하였는가? 장난을 친 일이 아직까지 전설로 내려오고 있으니 이는 매우 소중히 여길 만한 일이다. 나이는 누가 많고 누가 적은지 모르겠다.” 하니, 이병교가 아뢰기를, “신의 선조와 오성은 과장(科場)에서 서로 사귀게 되었는데, 한 번 보고 매우 친밀해졌습니다. 이는 사적(事蹟)에 실려 있는 바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 사귀었다고 하는 것은 민간에서 속되게 전하는 바입니다. 나이는 오성이 신의 선조보다 5세 많습니다.” ------------------------.. 2023. 11. 26.
정조의 주자학 사랑 개혁왕 정조??? 정작 알고보면 저모양이다. 주자학 외에는 새로운걸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18세기 까지 저러고 있던거 보면 너무 보수적이라서 가망이 없다. 지금 사학계에서 위인 이랍시고 모셔놓은 놈들도 알고 보면 다 저모양이다. 2023. 10. 26.
리하르트 분쉬 어록 모음 고종의 독일인 의사 분쉬 / 리하르트 분쉬 지음 / 김종대 옮김 ​ 요즈음 길에서는 참외를 무더기로 내놓고 파는데, 한국 사람들은 참외를 마구먹어 누구를 막론하고 설사를 합니다. 길 도처에서 설사하는 광경을 볼때엔 식욕이 싹 가십니다.(74쪽) ​ 서울의 길거리 청소는 견공들에게 맡겨놓은 상태다. 곳곳에 널린 대변을 개들이 먹어치우니, 길의 청결 여부는 견공의 식욕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 이번에는 천연두가 꽤 많이퍼졌습니다. 위생주의 조치에는 아랑곳 하지않고 천연두 환자들이 길에나 돌아다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죽어가는데, 미신 때문에 시체를 매장하지 않고 짚과 광목으로 싸서 성문 앞에있는 나무에 걸어둡니다.(81쪽) ​ 제가 차린 진료소는 잘되고 있습니다. 환자가 매일 서른명 .. 2023. 10. 18.
고려시대 편전(片箭) 고려 대몽항쟁때 김강신이 편전을 만들어 쏘았으니 그것이 한국 편전의 시초였다. 김강신이 중경유수를 지냈다는것 말고는 지금 자료가 없어 누군지는 알수없다. 그런데 편전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쏜건 아니고 서양에서도 편전을 만들어 쐈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청장관전서 제55권 / 앙엽기 2(盎葉記二) 편전(片箭) 편전은 다만 우리나라에만 있다. 그래서 중국의 창이나 일본의 총과 함께 천하무적이 되었다. 상고하건대, 중경유수(中京留守) 김강신(金强伸)이 원병(元兵)에게 포위되어 병기가 다 떨어졌을 때 엽전으로 화살촉을 만들어 사용하다가 원병의 화살 하나를 얻으면 넷으로 잘라서 통편(筒鞭)으로써 쏘았으니, 이것이 편전의 시초이다. 2023. 10. 16.
오선화의 한글론 올림픽에서 활쏘는걸 양궁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한자를 안써서 양궁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양궁이라고 부르니간 양궁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한글은 그냥 우민 문자 다, 한자 병기를 필수적으로 해야하지만 한글과 같이 병기하면 글만 길어지고 가독력도 떨어지고, 핵심만 병기 해봤자 사과 사과 , 사고 사고, 음모 음모, 무력 무력, 용장 용장 처럼 흔한 단어에서 발음은 같지만 뜻은 틀리다보니 헷갈리는건 똑같다, 이씨조선 시대 양반들이 쓴 한글편지 봐도 한자 병기도 안하고 띄어쓰기도 안했다. 글씨는 커서 일본 처럼 하지도 못한다. 2023. 10. 9.
공민왕이 그린 염제신 초상화 이그림을 소개한 이유는 공민왕이 그린 초상화다. 이색이 쓴글에서 이를 확인할수있다. 염제신 장례는 삼일장으로 치뤘고, 공민왕이 직접그렸다는 글은 밑에 글에 쓰여있다. 유교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인물이고, 오히려 문신 이지만 여러 전쟁터에서 활약 한걸로 보아 문무에 능했다는걸 알수있다. 고려시대를 보면 전쟁이 많다보니 이런 인물들이 많았다. ​ 염제신 1304∼1382 동문선 제119권 / 비명(碑銘) 고려국 충경공 염공신도비 이색(李穡) 지금 임금 9년 임술년 3월에 태평재상(太平宰相)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이 나이 79세로 병드니, 공경대부들이 날마다 문 앞에 와서 경과를 물었으며, 자손들이 마루에 가득하게 모여 탕약을 받들었고, 위와 아래에 기도하여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임금은 중관(中官)을 보내어.. 2023. 10. 7.
무토대사의 예언 무토대사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책을 쓰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언했다. 그런데 그 예언들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그저 갓본인 이라는 말밖에 할말이 없구나, 무토대사는 이책을 쓰면서 "지금 한국 시국에 경제 대통령을 뽑아야지 친북 대통령을 뽑으면 아떻게 하냐 멍청한 한국인 들아" 라고 말하고 있다. 문재인은 5년 재임 기간동안 한국의 수명을 50년은 단축 시켰다. 저출산, 고령화, 우영우 등으로 적화 통일은 더욱 빨라져 수십년후를 대처해야 한다.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의 책,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월간조선 2017.06.29. ‘최악의 대통령 문재인’ 무토 대사는 책에서 “북한 위협의 시기에 한국인은 친북반일 대통령을 선출했다”며 “내가 과거 만났을.. 2023. 10. 4.
신립의 죽음 - 탄금대 전투 용장 고니시 유키나가 https://iece12345.tistory.com/419 고니시 유키나가의 1만 8천병력과 싸워 조선군은 대부분 죽었으나, 고니시 군은 거의 피해가 없었다. 그때당시 신립이 가주고 있던 신립 예하의 군사는 총 8천명이 고작이었다. 그때 조선이 얼마나 병신 같은 나라였는지 보여준다. 신립의 죽음은 선조실록 보다 수정실록이 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수정실록을 보도록 하자, 신립 군사는 기록마다 틀리지만 유성룡의 징비록에는 8천이라 기록되어있어서 이기록이 가장 믿을만 하다. - 참고로 실록에는 10만 대군이라 쓰여있음 선수 26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4월 14일(계묘) 16번째기사 적병이 충주에 침입하여 신입이 전사하다 적병이 충주(忠州)에 침입하.. 2023. 9. 25.
용장(勇將) 고니시 유키나가 이걸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1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병력이 1만8천 이었다. 겨우 이병력으로 4월 12일에 상륙했고, 그후 후속 부대인 2군 3군이 각각 17일에 동시에 올라왔다는 점이다. 1군과 상륙날짜가 5일차이가 나는데 고니시 유키나가는 일종의 버림말로써 조선을 가늠하기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일본은 고니시를 이용해서 그냥 한번찔러 봤는데 조선이 워낙에 병신 같은 나라다 보니 일이 커진거다. 선조는 신립이 고니시에게 패한것을 듣자 의주까지 피난갔다. 고니시의 1만8천 병력한테 수도가 함락당하고 평양까지 점령당했다. 겨우 1만 8천 병력으로 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인가, 신립은 그당시 조선 최고의 무신이었다. 그런데 가주고 있던 병력이 겨우 1만 병력이 전부 였다. 침략자였던 고니시 병력보다도.. 2023. 9. 20.
윤치호와 우쉬오 대령 4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4(한국사료총서 번역서4)>1900년(광무 4년, 경자년)>12월 31일《월요일》 화창한 날씨. 오늘도 화창한 날이다. 어제보다 아주 조금 더 추워졌다. 원산에 있을 때 주목할 만한 인물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70세 조선인이었다. 그 노인은 지난 30년 동안 솔잎가루와 물만 먹고 살고 있다고 확언하였다. 그는 나이가 많지만 시력이나 청각이 좋았고, 몸은 꼿꼿하고, 치아는 튼튼하고, 걸음도 탄력 있다. 그 노인은 하루에 백리를 걸어갈 수 있고, 며칠 동안 달리기를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그 노인이 한 말에 따르면, 전라도 속리산 속에서 솔잎과 물만 먹으면서 오백 년 이상을 산 사람을 두세 명 보았다고 한다. 삼십 년 동안 솔잎과 물만 먹고 산다면 나.. 2023. 9. 14.
정도전의 죽음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8월 26일(기사) 제1차 왕자의 난.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이 숙청되다 정도전과 남은 등은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고자 하여 어린 서자(庶子)를 꼭 세자(世子)로 세우려고 하였다. 정도전과 남은 등은 등불을 밝히고 모여 앉아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소근 등이 지게문을 엿보고 들어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화살 세 개가 잇달아 지붕 기와에 떨어져서 소리가 났다. 소근 등이 도로 동구(洞口)로 나와서 화살이 어디서 왔는가를 물으니, 숙번이 말하였다. “내가 쏜 화살이다.” ​ 소근 등으로 하여금 도로 들어가 그 집을 포위하고 그 이웃집 세 곳에 불을 지르게 하니, 정도전 등은 모두 도망하여 숨었으나, 심효생·이근(李懃)·장지화 등은 모두 살해를 당하였다... 2023.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