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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113

송도의 명소 장유대 바위 투성이 개울인 장유대는 개성의 유명한 곳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서 놀고있다. 조선인들이 유명 관장지에다 지 이름 새겨 넣는건 100년전 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조선인들은 500년 동안 아무것도 안했고 일제시대에도 아무것도 안한 반면, 외국인들은 조선을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7월>30일《금요일》무더위. 30일 《금요일》 무더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오전 11시 50분 기차로 서울을 떠나 송도 집으로 왔다. 거의 오후 □시에 송도 집에 도착했다. 어린 장선이한테 약간 열이 있다. 내가 장유대(帳幽台) 개울이라고 이름붙인 바위투성이 개울은 송도의 명소 가운데 하나다. 계곡 사이를 흐르고 흘러서 해운대 개울.. 2023. 7. 26.
조선인 마을 화재 이글을 읽어보면 조선인들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할뿐 남이 피해를 봐도 상관을 안한다고 쓰여있다. 재미있는 건 지금도 똑같다. 현재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영끌들의 부동산 투기도 자신의 이익만 추구할뿐 남이 피해를 보건 사회가 엉망이 되건 상관도 안한 결과다. 조선인들은 평등 개념이 없기때문에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한 민족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에 대해 선(善)을 두는 이타주의가 부족한 민족이다. ​ ※이타주의 - 행위의 목적을 타인을 위한 선에 두는 윤리학상의 한 학설 4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4(한국사료총서 번역서4)>1902년(광무 6년, 임인년)> 4월 6일(음력 2월 28일)《일요일》 흐림. 이번 달은 나쁘게 시작되었다. 4월 1일 밤 조선인 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가옥 네 채를 태우고 .. 2023. 7. 18.
일제시대 조선 음식점 시대가 바뀌어도 천박하고 더러운 민족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월>13일 화요일 흐림. 13일 《화요일》 흐림. 어제 밤에 폭설이 내렸다. 오후 5시에 봉춘관(奉春館)에 가서 어제 결혼식을 올린 박석윤(朴錫胤)과 최설경(崔雪卿)의 피로연에 참석했다. 하객들은 대부분 청년들이었다. 많은 기생의 참석은 결혼식 피로연이 갖는 신성함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나는 그저 신부 오빠인 최남선(崔南善) 군이 안쓰러워 그 자리에 참석했을 뿐이다.그건 그렇고 서울에 있는 조선 식당들이 점점 더러워지고 있다. 그래서 도둑떼 소굴 같은 곳으로 외국인을 초청해 한식을 대접할 때마다 수치심으로서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다. 부랑자들이 음식점을 망쳐놓았다.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운영할.. 2023. 7. 14.
당당한 윤치호 윤치호의 미국 체류시절, 캘러웨이 박사는 목사로 조선에 가게되어 윤치호에게 조선의 수도가 잘 건설 되어 있냐고 물었더니 윤치호는 당당하게 조선의 수도는 초라하고 아주 형편없는 나라 라고 말했다. 수도가 그모양이면 지방은 말할것도 없다. 이러니 지금 한국은 제대로된 유적하나 없어 관광국으로 못써먹는 거다. ​ 2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2(한국사료총서 번역서2)>1893년(조선개국 502년, 고종 30년, 계사년)>4월 29일 《토요일》 더움. 오늘 아침 ‘졸업 논문상’ 논문을 전달하기 위해 캘러웨이 박사를 방문하였다. 그는 자기가 미국 목사로 조선에 가게 되었다며 나더러 자기 비서로 함께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또 조선의 수도가 잘 건설되어 있는지도 물었다. 나는 “아닌데요. 조선의 수도는 아주 초.. 2023. 7. 3.
광무태황제를 추억하며 이글을 통해 조선 이란 나라가 얼마나 지옥같은 나라였는지 잘 알수 있을것이다. 근데 읽어보면 구한말만 이랬던건 아니다. 도적이야 조선 500년 내내 들끓었고 수탈도 심했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0월>29일 금요일 화창한 날씨. 29일 《금요일》 화창한 날씨. 기침이 낫지 않아 여전히 누워 있다. 때때로 광무태황제가 지난 14년 동안 황제자리에 있었더라면 조선이 어떻게 되었을까, 또 조선인들은 지금쯤 어떻게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재미있어진다. 1.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광무태황제의 궁궐과 조정은 이용익(李容翊)·이지용(李址鎔)·민영철(閔泳喆) 같은 가장 야비하고 잔인하고 가증스런 악당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2. 전국에 도.. 2023. 7. 2.
500년 동안 아무것도 한게 없는 조선왕조 갈란드 선생과 윤치호 https://iece12345.tistory.com/165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장에 많은 명언을 남겼다. 더욱 놀라운것은 지금 한국인들에게도 적용이 가능하다는것이다. 이번글은 조선왕조는 500년동안 아무것도 한게 없다고 꾸짖고 있다. 그리고 이씨조선 숭배자들은 사라지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지만 난 조선뽕들을 이해를 못하겠다. 윤치호 선생도 말했지만 조선이란 나라는 잘난거라곤 하나도 없고 흉잡을 것만 있다. 더욱 불행스러운 것은 조선시대의 병폐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나라를 병들게 하고있다. - 예) 상명하복 , 사농공상 , 좌식문화 , 문치 등 2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2(한국사료총서 번역서2)>1894년(조선 개국 503년, 고종 31년, 갑오년)>10월>8일(음력 11일.. 2023. 6. 27.
윤치호의 식민지 근대화론 500년동안 아무것도 한게없는 조선왕조 https://iece12345.tistory.com/333 여기에 쓰여있는 글을 보면 일제시대에 1. 농업이 발전했다. 2. 양반들만 글방에서 교육을 배웠는데, 일제시대에는 신분관계 없이 평등하게 교육을 배울 기회가 왔다. 3. 강에는 다리가 놓여지고, 길에는 도로가 건설되었다. 그외에도 최신 의료 시설과 공장들이 세워졌다. ​ 9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9(한국사료총서 번역서9)>1935년(을해년)>9월 29일《일요일》 사랑스런 날. 서울 집. 오늘이 숙모의 85회 생일이므로 우리는 역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 분은 조선에서 가장 복이 많은 여성 중 한 명이다. 조선에 일본 정부 설립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총독부 당국에 의.. 2023. 6. 27.
중국인과 조선인 윤치호일기 제1권(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1888년>9월 6일~10월 4일(음력 1888년 8월 1일~8월 29일)>20일(15일, 목, 맑음) 20일(15일, 목, 맑음) 중추절(仲秋節)이라 3일 방학하다. 오후에 종쯔쥔 찾아 보다. 오늘 청인 풍속에 각처에 과자(菓子)와 음식 보내며 집집이 분향하며 귀신을 제사지낸다. 좁은 길에는 그 향내와 구린내 차마 견디기 어렵다. 똥뒷간 같은 조선에서 성장한 나에게 이러할 때 서양 사람이야 오죽이나 청인 더러운 것을 업신여기겠는가. 청인 남녀노소 없이 헛된 맹서와 욕 잘하기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배는 심하다. 글 읽고 행세하는 사람 자제라도 그 입이 더럽기 측량없다. 남의 방에 들어오면 세간을 뒤져보며, 남의 편지 뜯어보며, 그 요란하고 추잡하기가 우리나라 사.. 2023. 6. 23.
윤치호 아내의 죽음 2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43년(계미년)>4월 26일《월요일》 맑고 따뜻함. 서울 집. 화창한 날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취운정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아내가 영면에 들었으니 지난 39년 동안 우리가 티격태격했던 사소한 갈등들도 모두 그녀의 소중한 유해와 함께 영원히 땅에 묻혔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스러운 특징들은 여전히 내 마음과 감정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 1905년 꽃다운 열여섯의 나이로 매려가 나에게 왔을 때 어찌나 예쁘던지, 하디여사도 자기가 본 조선 처녀들 중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했었다. 매려는 근 40년 간 폭풍 같았던 내 삶의 우여곡절을 나와 함께 겪으며, 그 사이에 다섯 딸과 세 아들을 낳아주었다. 죽기 전 몇 달 동안 그녀가 로라.. 2023. 6. 14.
윤치호 아내의 죽음 윤치호 아내 백매려 https://iece12345.tistory.com/299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43년(계미년)>4월 10일(계미년3월6일)《토요일》 흐리고 쌀쌀함. 서울 집. 아내가 새벽부터 의식불명이더니 오후 3시 15분에서 20분 사이에 조용히 영면에 들어갔다. 히틀러의 저주를 받은 이 세상을 떠나 고통도, 눈물도, 근심도 없는 세상으로 갔다. 아이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밤 10시쯤 하얀 색 비단 천으로 만든 수의를 입고 건방에 누워 있는, 이제는 죽은 시신이 된 아내의 손을 잡았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잡는 손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내는 정확히 39년 전, 꽃다운 열여섯 살의 신부로 정확히 이 방에서 신방을 치렀었다. 2023. 6. 13.
가망없는 나라 조선 3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3(한국사료총서 번역서3)>1895년(조선 개국 504년, 고종 32년, 을미년) 8월 16일(음력26일) 《금요일》 프랑스 신부 샤르쥬 베프(Charge-beif)와 함께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다. 조선 문제의 상황이 나날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고 있다. 관직 임명권은 군주의 손안에 있는데, 모든 요직은 궁중의 금고를 채우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쥐어짜내는데 기술을 발휘하는 것이 유일한 재주인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 불행한 나라는 도덕적·정신적·정치적 타락이 밑바닥까지 이르러 그 어느 것도 이 나라의 거리나 오두막보다 지저분할 수 없고, 이 나라의 관리들보다 부패할 수 없으며, 이 나라의 백성들보다 무지할 수 없고, 이 나라의 식자(識者)들보다 뻔뻔하고 더 위선.. 2023. 6. 1.
윤치호 아내 백매려 작명 이글을 보면 윤치호 아내 백매려는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지었다는 걸 알수있다. 엔단위는 일본식 화폐단위다. 이걸봐서는 일제시대 이후에 작명을 했다. 여성 천시사상 때문에 조선시대 여자들은 이름도 없던 사람들이 많았다. ​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 1941년(신사년)> 2월 16일《일요일》 음울. 추움. 서울 집. 독감때문에 자리에 누워 있었다. 아내는 자기 이름을 매려(梅麗)라고 지어준 작명가에게 30엔을 주었다고 한다. 고운 이름이지만 그 이름 때문에 아내가 두통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게 아닌가 싶다. 2023.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