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113 이씨왕조의 용서받지 못할 죄업 윤치호 선생은 이씨왕조가 자신들의 보위를 유지하기 위해 한민족의 호전성을 제거했다고 말하고있다. 과연 이씨왕조는 어떻게 조선민족의 호전성을 제거했을까, 우선 조선 건국이념을 보면 문치(文治)를 건국 이념으로 내세웠다. 분명히 그전 송나라 사례도 있고, 문약(文弱)이라는 한자어 도 있다. 그런데도 문치를 건국 이념으로 내걸었다는건 속셈이 있는거다. 지금 한국 아이들이 몸이 부실하고 하고 나약한 이유가 공부만 하다보니 문약해져서 그런거다. 이 약해빠진 아이들이 과연 잘싸울까 겁쟁이에 싸움도 못하겠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거다. 그런식으로 이씨왕조는 조선국민의 호전성을 제거했다. 구한말 조선 군인들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 같이 비실 비실하다. 8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8(한국사료총서 번역서.. 2023. 5. 10. 윤치호 중국 거리를 거닐다 중국인 과 조선인의 공통점을 뽑자면 둘다 더러운 나라였다. 어느쪽이 더 더럽냐 하면 역시 조선인들이 더 더럽게 살았겠지, 그나마 중국인들은 목욕이라도 하고 살았지 않나 윤치호일기 제1권(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 > 1887년 > 1월 1일~1월 23일(음력 1886년 12월 8일~12월 30일) 16일(23일, 일, 흐림) 아침에 기침조를 어기다.종이 울려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비록 이르다고는 하나 조목을 어긴 것이다. 10시경에 예배당에 가 설교 듣다. 정오에 끝나다. 점심 든 뒤 고단하여 낮잠 자다. 4시에 일어나 차를 든 뒤 눈을 무릅쓰고 눈 오다. 시내로 가 상점 구경하다. 가옥이나 도로가 다른 지나(支那) 도회지와 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하천변의 가옥은 벽돌로 쌓았고 하천의 양편은 돌로 둘러.. 2023. 5. 9. 구한말 연회장에서 사극 에서는 안나오지만 조선시대 여성들은 언제나 담배를 물고 다니며 피워 댔다. 연회장 묘사한 글로 보건대 흡사 지옥을 방불케 한다. 비위생 환경, 찌든 담배 연기, 조선인들 특유의 천박함, 더 충격적인 건 이들은 전부 양반들 이라는 것, 귀족들의 특징적인 품위가 없다. 3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3(한국사료총서 번역서3)>1895년(조선 개국 504년, 고종 32년, 을미년)>3월 9일(음력13일) 《토요일》 따뜻하고 상쾌한 날. 거리는 지겨울 정도로 질퍽했다. 이모부(이건혁[李健爀])가 어제 청국 조랑말 한 마리를 보내왔다. 일본인 거류지에 가서 그 조랑말에 쓸 안장을 구했다. 기분 좋게 한번 탔는데 버선을 버렸다고 아버지께 꾸지람을 들었다. 오후 6시 내각 비서관들이 개최한 연회에 참석했다. 그곳에.. 2023. 5. 1. 자랑스런 황국 청년들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38년(무인년)>12월> 6일 화요일 오전에 흐림. 서울 집. 경성에 진짜 첫눈이 내려 땅에 얇게 쌓였다. 오전 10시 총독부 청사 제1회의실에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가와지마 총재의 취임식이 거행되었다. 각도 연맹 이사장들이 모두 참석했다. 오후 2시 부민관 대강당에 운집한 군중들이 어엿한 황군이 되어 여러 연대에 배치될 200여 명의 조선 지원병들을 치하하는 환송식을 지켜보았다. 경기도지사와 다카하시 신임 경성부윤, 그리고 내가 연설을 했다. 이 행사는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의 후원으로 마련되었다. 가와지마장군이 조선연맹 이사들과 임원들에게 저녁을 대접했다. 10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10(한국사료총서 번역서10)>1938년(무.. 2023. 4. 29. 한국의 완구 산업 지금같은 불경기에도 매출이 전혀 줄지않는 산업이 있다면 완구산업이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도 어린시절 추억에 잠기며 조립식 장난감을 만든다. 그러나 한국완구 산업은 전혀 발전을 못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미국, 중국, 일본에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이것도 한국의 전통이다. 과거부터 그랬으니 지금도 이런것 뿐이다. 삭막한 한국은 아이들, 청소년 행복도 세계 꼴찌인것처럼 동심이란게 없는 나라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2월>11일 《토요일》 흐림. 11일 《토요일》 흐림. 우리 은희의 상태가 훨씬 더 좋아졌다. 주여, 감사합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려고 진고개(泥峴)에 갔다. 문희와 명희는 일본인 상점에 형형색색으로 진열된 장난감을 보고 .. 2023. 4. 15. 증산교단 태을교(太乙敎) 태을교는 증산교단 이다. 자세한건 밑에 주석을 보자, 증산도는 지금도 있다. 윤치호는 일제가 각종 사이비 종교를 그냥 놔두는걸 불만스럽게 생각하고있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서도 사이비 종교는 그냥 놔두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똑같다고 할수있다. 사이비 종교에 쉽게 현혹되는 사람들은 이성력이 극히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1월 9일 《화요일》 오전에 흐리다가 오후에 갬. 데라우치 정권의 결점이 무엇이든, 그리고 결점이 많았다고 해도 한 가지 잘한 일은 엄격한 기강을 세운 것이었다. 데라우치 정권하에서는 무당과 점쟁이, 온갖 부류의 정치 협잡배들이 자취를 감추어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이토 총독 치하의 이른.. 2023. 3. 28. 광무태황제 고종의 죽음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월>23일《목요일》흐리고 포근함. 눈이 조금 내림. 섭씨 4도. 23일 《목요일》 흐리고 포근함. 눈이 조금 내림. 섭씨 4도. YMCA에 출근했다. 평균적 조선인은 10퍼센트의 이성과 90퍼센트의 감성으로 이뤄져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은 광무태황제의 승하 때문에 왁자지껄하고 있다. 유교적인 예문가(禮文家)로서 자부심을 지닌 많은 노인들은 역겨운 상복을 입고 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가슴속에 쌓인 울분과 수치심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다. 조선인들은 광무태황제의 승하를 두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광무태황제의 통치가 어리석음과 실수로 점철된 오랜 통치였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광무태황제의 승하가 .. 2023. 3. 27. 조선의 중국식 과장법 대한민국 국명의 미스터리 https://iece12345.tistory.com/73 이글의 중국식 과장법을 현재 한국에서 찾아보자면 한국의 국명또한 중국식 과장법이다. 이 조그만 반도땅에 대한 이라는 중국식 국명을 지었으니 말이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4월>24일 《토요일》 흐림. 24일 《토요일》 흐림. 일찍 일어났다. 아침 7시 50분 기차로 송도를 떠나 서울로 왔다. 날은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농부들이 비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송도 집 뒤쪽에서 흐르는 작은 개울 바닥의 바위에 어떤 바보 같은 인간들이 유명한 폭포를 묘사한 한시를 새겨놓았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물론 원래의 시는 전형적인 중국식 과장법을 사용한 시다. 하지만 .. 2023. 3. 24. 윤치호 일기 - 의친왕 이강 의친왕 이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현재 사학계에서는 이씨왕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항일 정신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있다. 그때문에 이씨왕족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의친왕 이강은 1899년(광무 3) 미국으로 유학가기도 했으나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교에서 미국인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버지니아주 로노크대학 으로 옮겨가 공부했다. 그래서 의친왕의 약력을 보면 대학교가 두개 쓰여있다.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1월 14일 《금요일》 아침에 안개 끼고 비가 조금 내림. 그 뒤 갬. 감기가 상당히 많이 나았지만 아직 외출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지는 못했다. 의친왕이 이 나라를 떠나려고 시도하다가 의주에서 잡혔다는 소.. 2023. 3. 21. 조선의 장례문화 조선인들의 허례허식은 결혼식 이나 장례식 같은 관혼상제에 많다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0년(경신년)>10월 8월 《금요일》 화창한 날씨. 이 씨의 사무실에서 푹 쉬었다. 이른 아침을 먹은 뒤 인력거를 타고 고모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양으로 갔다. 장지가 고모님 댁 근처라 장례행렬이 그리 멀리까지 가지는 않았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곡소리도 굉장히 컸다. 물론 이 곡소리의 대부분은 남을 의식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제사상을 차린다. 500여 명의 문상객에게 하루 세 번 식사 대접을 한다. 조선인은 종종 장례비용 때문에 파산하고 만다. 요컨대 조선인의 장례식은 의미 없는 의식, 눈물 없는 애도, 분수에 넘치는 비용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될.. 2023. 3. 17. 윤치호와 김영조 7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7(한국사료총서 번역서7)>1924년(갑자년)>3월 1일 《토요일》 맑고 몹시 추움. 서울 집이다. 아내가 아프다. 성홍열일까? 기선이도 아프다. 김영조(金永祚)가 하나루 페리(Hanaru ferry)로 건너다가 22일(?)에 익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영조는 내 이복 여동생의 장남이다. 우리 의붓어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영조를 위해서 농경지 등 상당히 많은 생계수단을 마련해주셨다. 영조는 곧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렸고, 1915년 내가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는 극도로 궁핍한 상태가 되어 □천(川)에서 어느 집 행랑이나 하인방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영조와 그의 식솔을 용혈리(龍穴里)로 데려와서 집을 마련해주고 1년에 쌀 25가마니씩을 연금으로 주었다. 다행히 영조는 .. 2023. 3. 16. 조선 선비의 모습 ※서전書傳 - 남송의 성리학자 채침(蔡沈)이 찬술한 《서경》의 주석서를 말한다 ※서경書經 - 5경의 하나로, 고대 중국의 정치를 기록한 유교경전 6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6(한국사료총서 번역서6)>1919년(기미년)>11월 10일 《월요일》 화창한 날씨. YMCA에서 근무했다. 내가 존경하는 친구인 이종원은 위대한 한학자이거나 위대한 한학자가 되었어야 했다. 이종원은 젊을 때 『서전(書傳)』만 400번 읽었고, 다른 고전도 그만큼 많이 읽었다. 조선식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종원의 뇌(또는 배)는 중국 현자들의 현명한 말로 가득 차 있다. 어느 여름날 나는 이종원이 억수같이 내리는 비에 신발이 흠뻑 젖어 버린 것도 모른 채 방에 앉아서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조선 500년이라는 수치스러운 세월.. 2023. 3. 15. 이전 1 2 3 4 5 6 7 8 ··· 10 다음